평양 무대섰던 라이바흐 "아리랑 함께 부르며 남북주민과 교감"

입력 2017-04-30 10:30   수정 2017-04-30 12:08

평양 무대섰던 라이바흐 "아리랑 함께 부르며 남북주민과 교감"

2015년 평양공연한 슬로베니아 록밴드, 전주서 공연…평양입성기 담은 다큐 상영

"평양 공연 때 검열당한 노래·영상 선보일 것"




(전주=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북한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북한 금성학원 학생들과 한국어로 아리랑을 같이 불렀을 때였어요. 음악을 통해 북한 사람들과 교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이번 전주공연에서도 '아리랑'을 부를 예정입니다."

2015년 서방 록밴드 최초로 평양 무대에 섰던 슬로베니아의 '라이바흐'가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난다.

이들은 오는 5월 1일 대형 텐트 형태의 야외상영장인 전주돔에서 평양 공연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리베라시옹 데이'를 선보인 뒤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29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밴드 멤버 미나(여성보컬), 루카(키보드)와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은 "평양에 이어 전주에서 남한 관객과도 만나게 돼 기쁘다"며 "남북한 간에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한 사람들이 동일한 민족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 음식이나 사람들이 지향하는 것, 성격 등이 비슷한 것 같아요. 남한이 훨씬 부유하지만 민족성이나 정수는 같다는 것이 느껴집니다."(트라비크)

'라이바흐'는 냉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80년 사회주의 정권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결성된 록 밴드다. 군복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영상을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스타일의 공연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이 2008년부터 북한과 예술 교류를 해왔던 트라비크 감독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 하면서 북한에서 공연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트라비크 감독이 이를 북한 당국에 제안해 평양 공연이 성사됐다고 한다.

노르웨이 출신의 트라비크 감독은 노르웨이 페스티벌에 북한 어린이들을 초청해 현지 학생들과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북한 매스게임 지도자를 노르웨이에 초청해 노르웨이 군부대와 함께 매스게임을 선보이는 등 북한과 다양한 형태의 예술 교류를 진행해왔다.

루카는 "우리는 어떤 국가의 사상이나 이념과 연결된 이미지를 부각해 우리가 하는 노래나 퍼포먼스에 사용해왔다"며 "평양 공연 역시 북한이라는 나라의 사상을 이용해 우리의 퍼포먼스와 음악을 폭넓게 열 기회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리베라시옹 데이'에는 라이바흐가 2015년 8월 북한을 방문해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광복절(해방일) 기념 공연을 펼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7일간 평양에 머물렀던 이들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북한 당국의 수많은 검열과 제재로 힘겨운 협상을 거듭했는데 트라비크 감독은 이 과정을 적나라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모르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답답한 점이 많았죠. 가장 힘든 것은 기술적인 제약이었습니다."(미나)

이들은 평양 공연에서 자신들의 노래뿐 아니라 북한 주민에게 친숙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들을 재해석해 불렀다. 민요 '아리랑'을 한국어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검열 과정에서 북한 노래 두 곡이 공연 리스트에서 제외됐고 일부 영상이 삭제되기도 했다.

"모란봉악단이 불렀던 '가리라, 백두산으로'와 혁명 가극에 나오는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르려고 했는데 원곡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부르지 못하게 됐어요. 에델바이스를 재해석한 곡에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 영상을 삽입한 것도 검열 과정에서 제외됐고, 나체 조각상이 들어간 영상도 쓸 수 없었죠."(루카)

하지만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검열할 때는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지만 북한은 뚜렷했고 표면적이었다"며 "빙산의 윗부분은 검열당했어도 아랫부분 70~80%는 그대로 들어갔다. 일부는 포기했지만 큰 부분은 밀고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연을 준비했던 당시 남북 간에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폭발 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다큐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도 담겨있다.

"이 때문에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왔잖아요. 확실한 공통점 중 하나는 남북한 모두 사람들이 이런 것에 위협을 느낀다든지 하는 게 없다는 거에요. 이런 뉴스에 개의치 않고 차분히 삶을 사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트라비크 감독은 북한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아리랑을 불렀던 순간을 꼽았다.

그는 "북한 금성학원의 학생들과 같이 호흡을 맞춰 처음으로 아리랑을 리허설했을 때 가장 감명 깊었다. 음악을 통해 북한 사람들과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번 공연에서도 한국어로 아리랑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큐 마지막에 담긴 평양 공연 장면에서는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난생처음 외국 록밴드 공연을 접한 북한 관객들은 '이게 뭐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끄덕거리기도 한다. 귀를 틀어막은 관객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힌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뭔가 혼란스러운 의문을 던지는 것, 이 '조용한 혼란'이 우리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이었다"며 "관객이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하면서 스스로 지평을 넓히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공연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전주공연에서 아리랑과 함께 라이바흐 스타일로 재해석한 북한 노래와 등 평양 공연에서 검열당한 노래와 영상을 선보일 계획이다.

"영화와 공연을 동시에 선보이는 것은 작년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북한 무대에 올리지 못했던 북한 노래 두 곡도 들려드릴 계획이에요. 라이바흐가 재해석한 북한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습니다. 북한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이 '조용한 혼란'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이들은 한국을 방문해 전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hi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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