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네기홀 복귀 정경화 "고통 지나며 겸손하게 연주"

입력 2017-05-01 17:00  

<인터뷰> 카네기홀 복귀 정경화 "고통 지나며 겸손하게 연주"

바흐 무반주작품 전곡 '하루 연주'에 도전…인내 가르쳐준 스승에 헌정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가 5월 18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 선다.

메인 공연장인 '스턴 오디토리움'의 무대에서 혼자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한다.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가 없는 3시간의 독주다.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과 음악적 깊이에다 체력까지 더해져야 정복되는 '바이올린의 에베레스트'이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으로 구성된 이 곡을 이틀에 나눠 연주했다. 하루 연주에 도전하는 것은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정경화가 처음이다.

정경화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6곡을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69세다.

1967년 카네기홀에서의 첫 연주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의 첫걸음이었다면, 이번 연주는 이후 50년 동안 단련해온 음악적 내면을 응축시키는 무대다. 문답은 다음과 같다.



--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서 우승하고 그해 5월 16일 카네기홀에 데뷔했다.

▲ 13살 때 뉴욕으로 유학 와 카네기홀의 제일 싼 발코니석 티켓을 사서 거장들의 연주를 보곤 했다. '나도 언제 성공해서 서보나' 하던 꿈의 무대였다. 유학 6년 만에 레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서 1등 하면서 그곳에서 연주했다. 올해로 50년이 된다.

-- 크고 작은 공연까지 하면 카네기홀에서 이번이 20번째 공연이다. 익숙한 장소여서 긴장이 덜할 것도 같다.

▲ 익숙하기는 성장해서 22살 때 첫 연주를 했던 영국 런던 페스티벌 홀이다. 이곳에서 많이 연주해서인지 지금도 내 집처럼 편하다. 카네기홀은 안 그렇다. 어린 시절 고생하면서 동경했던 무대이고, 홈타운이어서 오히려 두려움이 있다.






-- 바흐 무반주작품 전곡으로 지난해 앨범을 냈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유학 시절 스승인 이반 갈라미언(1981년 작고)에게 처음 배운 곡으로 안다.

▲ 1973년에 두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끝나고 "나는 준비가 안 됐고 너무 어리다.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때 평론도 아주 좋게 나왔다. 그런데 괴로운 것은, 옆에서 아무리 침이 마르게 칭찬해도 나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 곡을 연주할 기회를 기다리다가 2005년(손가락 부상으로 공백기가 시작됐던 해)을 맞았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2010년 제 손가락이 나았다. 2012년 명동성당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데 너무 행복했다. 파르티타 2번 '샤콘느'를 하는데 너무 좋은 거다. 그때 (나의 연주가) 현실화될 수 있구나 싶었고, 지난해 앨범까지 냈다. 55년이 걸렸다.

-- 어떤 곡인가.

▲ 기막힌 오르가니스트였던 바흐는 오르간의 웅장한 표현을 바이올린이라는 이 작은 악기에 집어넣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보통 연주회는 인터미션을 한번 두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두 번이다. 세 등분으로 나눴을 때 '샤콘느'로 끝나는 중간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너무나 웅장하다.

이 연주에는 굉장한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집중력이다. 예술인들은 몰두해서 연주할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제 나이에 이 연주를 하는 것은 체력에 더해 정신력으로 하는 것이다. 올해 무반주 6곡을 전부 연주하는 게 이번이 8번째다. 6곡 전곡 연주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려고 한다.

-- 손가락 부상에 따른 공백기가 연주생활에 어떤 영향을 줬나.

▲ 손가락을 다쳐 연주를 못 하니 한걸음 물러서서 보게 되더라. 그때는 '나는 은퇴'라고 생각했다. 줄리아드 교수로 5년 가르쳤다.

그때 느낀 게 '음악의 뼈대는 역시 바흐'라는 것이었다. 하모니 구조를 이렇게 천재적으로 구상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없다. 바흐가 지루하다고들 하는데 저에게는 절대 안 그렇다. 바흐의 멜로디는 마음의 영혼을 울리는 멜로디다.

음악의 표현은 절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고통이 있어야 나온다. 저도 그런 고통을 가져봤다. 이제 정말 겸손하게 바흐 무반주곡을 카네기홀에 들고 간다. 욕심부리자면 또 하고 싶다. 주변서는 내년 프랑스 파리에서도 6곡 다 연주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카네기홀로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스승인 갈라미언에 대한 기억이 새로울 것 같다.

▲ 이번 연주는 갈라미언 선생님에게 헌정하는 연주다. 선생님이 있어 오늘날 제가 있다. 선생님은 여자인 저에게 "네가 (음악인이) 되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제가 국제콩쿠르 우승 후 연주회를 다니는 것을 보고 "남자 소녀(boy girl)"라며 좋아하셨다. 제가 힘들다고 불평할 때마다 "인내하라"고 해주셨다. 지혜를 많이 주셨고, 선생님의 한두 마디가 평생 저를 지켜줬다.

-- 연주하면서 실수하기도 하나.

▲ 물론이다. 실수는 안 할 수가 없다. 젊은 음악인들은 올림픽대회에 나간 선수가 기록 경신하듯 테크닉이 훨훨 난다. 그러나 저의 팬 중의 한 명은 제 연주를 포도 주스가 아니라 잘 익은 와인에 비교하더라.

카네기홀서는 완벽한 연주를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완벽'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 지금도 바이올린이 좋은가.

▲ 저는 무대에 서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제가 그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지금도 미칠 정도로 좋다. 바이올린은 지금도 한도 끝도 없이 신비하다. 옛날에는 완벽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자유로워졌다. 다만, 음악인으로서 책임감은 항상 지키려고 한다.

quinte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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