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가 4일 자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다고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정부 정책과 조치, 국내외 연구성과 등을 정리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당초 정부의 계획처럼 '백서'로 발간되지 않고 민간 연구용역 보고서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여성가족부는 보고서 앞쪽에 "보고서의 내용은 연구진의 의견이며, 여성가족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님을 밝혀둡니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2014년부터 추진해 온 정부 차원의 '위안부 백서' 발간 계획이 철회됐음을 의미한다. 유력 대선후보 전원이 한일 위안부합의에 반대하고 있는 데다 며칠 뒤면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상황에서 여가부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가부가 위안부 보고서를 민간 연구용역 형태로 발간한 배경에는 아마도 한일 위안부합의가 있을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외교부 장관 회담을 통해 타결된 위안부합의는 양측 합의사항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합의사항은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과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 한국 정부 주관의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예산 투입,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적절한 해결 등이다. 이런 합의사항이 착실하게 이행되면 향후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난이나 비판을 자제키로 했다. 아마도 정부 차원의 백서가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 등으로 번역되면 위안부합의를 위반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짐작된다.
연구보고서의 내용도 정부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가 피해자 강제동원에 관여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일본군과 정부의 가해 행위는 노예협약, 강제노동협약, 매춘여성매매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 위반이자 국제법상 전쟁범죄, 인도주의에 대한 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개별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국내외 자료를 제시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해서도 "법적 배상을 합의문에 명백하게 담지 못했다는 점은 가장 근본적인 한계"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번 민간보고서는, 1992년 외무부 산하 실무대책반에서 위안부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25년 만에 나온 것이다. 여가부는 2014년 6월 일본이 '고노 담화 검증보고서'를 작성해 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백서 발간을 추진했다. 용역을 맡은 연구진은 한일 위안부합의 발표 이틀 뒤인 2015년 12월 30일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후 1년 4개월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온 결과가 이 민간보고서다. 여가부는 정부 백서를 포기한 이유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학술적 견해와 입장을 아우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여가부의 판단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지를 줄인 것이나 다름 없다. 여가부 설명대로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있다면 좀 더 시간을 들여 의견을 모아야지 이제 와서 서두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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