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뒤죽박죽 망가진 일상…"차라리 방독면 쓰고 싶다"(종합)

입력 2017-05-03 18:32  

미세먼지로 뒤죽박죽 망가진 일상…"차라리 방독면 쓰고 싶다"(종합)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성진 이도연 기자 = "공기가 이상해요. 숨을 못 쉬겠어요, 엄마"

3년 넘게 캐나다에서 살다가 지난달 모처럼 한국을 찾은 신 모 씨(32·여·서울 가회동)는 공항 밖을 나오는 순간 심한 호흡 곤란을 느끼고 캐나다에 거주하는 부모님에게 이런 채팅 메시지를 보냈다.

신 씨는 "마치 과거 태국 여행을 갔다가 방콕 시내 오토바이 매연을 들이마셨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며 "서울에 온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목과 코가 염증 때문에 부어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의 원인이 복합적이라면서 이에 맞는 배출 감소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에 가능하면 노출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이 생활 수칙 등을 잘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 망가진 일상…마스크값만 月 수십만원

최근 한반도를 덮은 심각한 미세먼지는 신 씨와 같은 외래인 뿐 아니라, 수십 년간 이 땅에서 생활한 한국인에게도 매우 낯설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이었던 생활의 많은 부분이 미세먼지 탓에 '그 날 운이 좋아야 겨우 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됐다.

김 모 씨(49·남·서울 대치동)는 요즘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과 함께 매일 저녁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게 큰 낙이었지만, 최근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거르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건강을 위해 걷다가 오히려 미세먼지를 더 많이 들이마실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취미인 주말 등산도 수개월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요리를 시작할 때면 미세먼지 스트레스는 절정에 이른다.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심각한 미세먼지를 빼내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자니 밖으로부터 유입되는 미세먼지가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미세먼지 때문에 경제적 부담까지 늘었다.

김 씨는 얼마 전 미세먼지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마스크를 5만 원어치나 샀다. 꽤 큰 지출이지만, 일회용이기 때문에 네 명의 가족이 매일 사용하니 2~3일 만에 동났다. 미세먼지 농도가 계속 '나쁨' 수준이라면, 김 씨 가족의 가계부에는 한 달 수십만 원의 '마스크 구입비'가 새 정기 지출 항목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 몸에 미세먼지가 축적될 수 있다'는 얘기에 서둘러 수십만 원대 공기청정기도 주문했다.

김 씨는 "돈을 들이고도 미세먼지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면, 차라리 방독면을 쓰고 싶다"며 "한 때 공기 나쁜 곳에 사는 중국인을 측은하게 생각했는데, 내 얘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신 모 씨(43·남·서울 본동)는 지난 1일 초등학생 아들 운동회에 갔다가 헛걸음을 했다. 당초 학교에서 공지한 운동회 시작 시각은 오전 10시였지만, 갑자기 9시 20분께 "미세먼지 때문에 2학년 운동회는 9시 30분부터 실내 강당에서 진행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서둘러 강당을 찾았지만, 이미 운동회는 '약식'으로 20분 만에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 씨는 "40여 년 평생 내 운동회, 주위 사람들 운동회를 많이 겪었지만, 공기 질 때문에 운동회가 사실상 취소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미세먼지 농도 기준 낮추고 미세먼지 배출량 줄여야"

미세먼지가 거의 매일 한국의 하늘을 뒤덮으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미세먼지의 원인에 대해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중국발'이 대부분이라는 의견과 국내 영향도 크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승묵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세먼지 원인은 매일 다르지만, 우리나라가 편서풍 지역이어서 여름철 빼고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중국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돼 2000년대 초반보다 현재 중국의 영향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초미세먼지의 경우 절반 정도는 중국의 영향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요인은 한 가지로 말하기 쉽지 않다.

이승묵 교수는 "초미세먼지(PM2.5) 화학성분을 분석해 오염원을 찾아냈더니 서울시의 경우 오염원이 가솔린과 디젤 같은 교통 오염원, 음식점 숯불구이와 같은 생체소각 오염원, 공장지대 오염원, 도로 비산먼지, 황사 때 주로 나타나는 토양성분 등 9개 정도 됐다"며 "2003~2007년 모은 520개 샘플과 서울시 사망자료·유병 자료 등과 맞춰봤더니 교통 오염원, 생체소각 오염원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경유차가 나쁘다고 하지만 그 비중이 크지 않다"며 "산업체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도로와 농경지의 비산먼지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구윤서 안양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국내 미세먼지 원인은 화력발전소, 공장, 자동차, 화목 연료 같은 여러 가지 난방 연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승묵 교수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기준이 24시간 기준이든 연평균 기준이든 높다(느슨하다)"며 "그러나 농도 기준보다 배출 기준을 강화하는 게 먼저이며, 농도 기준을 낮춘다고 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초미세먼지는 일평균 50㎍/㎥를 초과하면 나쁜 것으로 분류하지만, 미국·일본 등에서는 35㎍/㎥를 넘으면 나쁘다고 본다.

아울러 농도 기준보다도 배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구윤서 교수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며 "미세먼지라는 '외부 영향'을 줄이려면 배출원에 대해 조사하고 감축하기 위해 비용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 "교실 등 실내도 안심 못 해…창문 닫아도 초미세먼지 침투"

환경 전문가와 환경부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은 일반적으로 바깥 활동을 삼가고 오염된 바깥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창문 등을 닫고 실내에서 생활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교실이나 버스, 지하철 안 등 실내 공간의 오염이 실외보다 더 심각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권호장 단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실내 오염원이 없는 경우라면 미세먼지 '매우 나쁨'(PM10 기준 151㎍/㎥ 이상) 단계 등 실외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경우는 창문을 닫아 오염된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실내에서 생선이나 고기 등을 구울 때나 요리할 때는 미세먼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배기시설이나 공기청정기 등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부도 미세먼지가 매우 높은 날은 가급적 창문을 닫고 환기횟수를 줄여 미세먼지가 외부에서 실내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실내에서 기름 등을 사용한 요리를 하거나 청소 혹은 흡연을 한 경우에는 실내 공기가 더 나쁠 수 있으므로, 창문을 열 거나 환기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 좋으며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 할 경우에는 가능하면 3분 이내로 짧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천식, 만성 호흡기질환 등 몸이 약한 이들은 미세먼지가 낮아질 때까지 가급적 창문을 열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창문이나 문을 닫더라도 외부 오염 물질이 실내에 들어오는 것을 완벽히 막기는 어렵다.

이승묵 교수는 "기본적으로 바깥 미세먼지 농도가 높으면 창문을 다 닫아놔도 지름이 2.5㎛보다 작은 초미세 먼지(PM2.5)는 틈새를 통해 안으로 들어온다"면서 "이런 경우 실내에서는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윤서 교수는 "고농도 미세먼지에 한 시간 노출됐다고 바로 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 높은 농도의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호흡기질환·심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는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외부에서 운동하면 호흡량이 많아지므로 격렬한 운동을 삼가며 국가에서 정한 황사 방지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ungjin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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