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中에 '배신' 거론하며 노골적 불만 표출 배경은

입력 2017-05-04 00:35   수정 2017-05-04 16:11

北, 中에 '배신' 거론하며 노골적 불만 표출 배경은

중국의 제재·압박 동참행보에 '견제구'…형식은 수위조절



(서울=연합뉴스) 지성림 기자 = 북한이 대북 제재·압박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3일 '조중(북중) 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최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공조 모드인 중국을 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북한이 그동안 '주변국', '이웃 나라' 등으로 지칭하며 중국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던 관례에 비춰볼 때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직접 중국을 맹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앙통신은 이날 "중국의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걸핏하면 거론하는 '국가적 이익의 침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우리가 할 말이 더 많다"며 "상대의 신의 없고 배신적인 행동으로 국가의 전략적 이익을 거듭 침해당해온 것은 결코 중국이 아니라 우리 공화국(북한)"이라고 주장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이 과거부터 품어온 불만까지 끄집어내며 중국에 할 말을 했다는 것이다.

통신은 25년 전에 이뤄진 한중 수교에 언급, "(중국은 한국과) 경제교류의 테두리를 벗어나 정치·군사적으로까지 관계를 심화시켰다"며 "동북 3성은 물론 중국 전역을 반공화국 전초기지로 전락시켰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초대해 톈안먼(天安門) 광장 주석단에 자리하게 했던 사실까지 상기시키며 "(한국과) 세상 보란 듯이 입 맞추며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통신은 특히 북·중 관계의 오랜 역사를 거론하며 미국과 공조해 대북 제재에 나서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조중 관계의 근본을 부정하고 친선의 숭고한 전통을 말살하려는 용납 못 할 망동"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조중 관계의 '붉은 선'(레드 라인)을 우리가 넘어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난폭하게 짓밟으며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며 "조중 친선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목숨과 같은 핵과 맞바꾸면서까지 구걸할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북한의 이 같은 대중국 비난은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대북 영향력 행사를 요구받은 중국 당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추가 대북 제재를 시사하고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관영 매체를 내세워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까지 거론한 데 대한 반발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중 간에는 서로 불만이 있어도 대외적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는데 현재는 그 같은 관행마저 깨트릴 정도로 북·중 관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북한은 또 이번 논평에서 "이미 최강의 핵보유국이 된 우리에게 있어서 선택의 길은 여러 갈래"라며 중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의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앞서 한성렬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은 지난달 30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를 만나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양측의 면담이 북한의 요청으로 성사됐다는 점에서, 그리고 러시아 담당도 아닌 미국 담당 부상이 러시아 대사를 만났다는 점에서 러시아 측에 북미협상을 위한 다리를 놓아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정 실장은 "북한은 앞으로 중국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은 외무성 명의나 '조선중앙통신 논평'과 같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 "김철이 발표한 논평"이라는 전제를 달아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동안 북한에 대한 경고와 압박의 메시지가 중국 당국이나 공식매체보다는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환구시보 등 관변매체에서 주로 나왔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외무성 등을 내세워 공식적으로 중국을 맹비난했을 때 따라올 후폭풍을 우려해 '개인 필명'이라는 형식으로 수위를 낮췄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yoon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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