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지시로 '혁명기념판 실종사건 토론회' 무산

입력 2017-05-04 11:06  

태국, 군부지시로 '혁명기념판 실종사건 토론회' 무산

경호, 예산 등 왕실관련기관 업무 국왕 직할법 시행, 왕권강화 조치 계속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방콕에서 발생한 "혁명기념판" 실종사건을 논의하려던 태국외국특파원협회(FCCT) 주최 토론회가 군부정권의 명령으로 무산됐다.

FCCT는 3일 방콕에서 혁명기념판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왕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는 글이 적힌 다른 동판이 설치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막판에 현지 경찰이 FCCT에 서한을 보내 토론회는 "국가의 안전에 대한 위협" 이며 "절조없는 개인이 혼란을 일으키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취소를 요구해 개최가 무산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4일 전했다.

정부 대변인은 "대립을 일으키고 국가에 이익이 되지 않는 사안을 끄집어 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혁명 기념판은 태국 절대왕정 폐지의 계기가 된 무혈 혁명을 기념해 설치된 것으로 그동안 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간주돼 왔다.

그런데 방콕 시내 두짓 궁전 박물관 앞 국왕 광장 바닥에 설치돼 있던 지름 30㎝의 이 기념판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왕에 충성을 다하라는 내용의 다른 금속판이 부착된 사실이 지난달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새로 설치된 동판에는 "국가, 가족존중, 국왕에 대한 충성이 국가가 번영하는 길"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입헌혁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태국에서는 2014년 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체제나 왕실 등과 관련된 언론 활동을 통제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그동안에도 군사정권의 개입으로 몇개의 토론회와 세미나가 무산됐으며 언론을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태국 민주화 운동 단체인 새민주운동(NDM) 등은 입헌군주제를 부정하는 극단 성향의 왕당파들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의 하나로 기념판을 파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당국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라진 기념 판을 찾아달라는 청원을 제기하고 방콕 시 당국에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설치된 CCTV 화면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 당국은 교통 신호 개선 작업을 위해 광장에 설치됐던 11대의 CCTV 카메라가 사건 발생(4월1일) 전날인 지난달 31일 철거돼 사건 현장이 찍힌 영상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NHK는 그동안 정부와 군이 담당해온 왕실 관련 5개 기관의 예산과 경호 등을 작년 12월 즉위한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국왕이 직접 관할하도록 하는 법률이 2일 시행에 들어갔다면서 왕권강화 조치의 하나로 보인다고 전했다.

와치랄롱꼰 국왕은 금년 1월 이미 국민투표를 거쳐 승인된 새 헌법(안)의 변경을 요구해 국왕 부재 시 직무를 대행할 섭정 임명에 국왕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는 등 국왕의 권한 강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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