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보존 어렵자 독일 화가가 자기 집 뜰로 이전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흑인 민권 운동가이자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자 파크스 여사의 집이 독일 베를린으로 이전됐다. 미국에서 이 집을 보존하겠다는 자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독일 화가가 자기 집 뜰에 옮겨 보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화가인 라이언 멘도사 씨는 미국 일리노이주 디트로이트에 있던 파크스 여사의 집을 베를린 시내 웨딩 지역에 있는 자신의 집 뜰로 옮겼다. 보존 희망자가 없어 유서 깊은 이 집이 흘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파크스 여사가 1955년 앨라배마 몽고메리에서 백인들의 버스 좌석 양보 요구를 거절했던 사건은 마틴 루서 킹 목사 주도의 광범위한 흑인 민권운동으로 번졌다.
그는 이 사건 후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1957년 디트로이트로 이사했다. 디트로이트에서 파크스 여사가 살았던 집은 그의 사후 보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흘릴 지경에 처했다. 그의 조카 리아 매콜리 씨가 이 집을 500달러에 사들이긴 했으나 보존 희망자를 찾지는 못했다.
사연을 알게 된 멘도사 씨는 자신의 그림을 팔아 10만 달러(약 1억1천만 원)를 모으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어 파크스 여사의 판잣집을 뜯어내 베를린으로 옮겼다.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미국 역사학 전공 대니얼 기어리 교수는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대개 국내에서 유적을 보전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번 경우는 이례적이라며, 이는 인종주의 유산을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현대 미국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크스 여사의 집을 가급적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지난 겨우내 거의 혼자서 맨손으로 작업했던 멘도사 씨는 복원을 마치고 지난달 8일 조촐한 개원식을 했다.
복원된 집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가고 판자가 낡아빠진 등 파크스 여사가 살았던 시절의 모습과 흡사하다. 예쁜 화단이나 말뚝 울타리는 설치되지 않았다.
매콜리 씨는 이 집은 동화의 무대가 아니었고, 많은 것을 희생하고 고통받았던 고귀한 여성을 기리기 위한 곳이라며, 외관을 치장하지 않아 더 기쁘다고 털어놓았다.
파크스 여사의 집이 미국에서 먼 독일로 이전해온 것은 인종차별, 불편한 역사를 돌이켜 보고 반성하는 두 나라의 차이를 드러낸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독일은 고통스럽더라도 과거를 반성하는 모범을 보이지만, 미국은 역사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의 역사로 인해 큰 죄의식을 갖고 있고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만, 극우 보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논의는 더는 민주주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에 복원된 파크스 여사 집에는 하루 50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다. 방문객들은 베를린이야말로 파크스 여사의 집이 길이 보존될 수 있는 최적격지라고 입을 모았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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