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중의 고강도 '쌍끌이 제재'를 받아온 북한이 갑자기 중국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과거 중국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 북한은 '주변 나라', '대국' 등 간접적 표현에 의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중국'을 직접 지칭해 거칠게 험구를 날린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일각에선 전통적인 북·중 우호 관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3일 '김철'이란 개인 명의 논평에서 "중국이 북·중 관계의 '붉은 선'을 난폭하게 넘어서고 있다"면서 "목숨 같은 핵과 맞바꾸면서 (친선을) 구걸할 우리가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개인 명의를 쓴 것은 그래도 비난의 톤을 낮춰 화해의 여지를 남기려는 의도인 듯하다. 이 통신은 25년 전 맺어진 한·중 수교, 2015년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전승절 열병식에 초청한 일 등을 시시콜콜 거론하면서, 북한을 무시한 중국의 이런 행보가 현재 미·중의 제재 공조로 이어졌다고 강변했다. 언뜻 보면 비난 일색으로 비치지만 원망 비슷한 감정도 조금은 느껴진다. 북·중 우호 관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통일부는 "대단히 이례적인" 논평이라면서 "중국도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논평에 개인 명의를 쓴 것은, 그래도 중국과 끝까지 갈 생각은 없음을 내비친 듯하다. 하지만 그 정도 배려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북한 입장에서 중국은,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전통적 동맹국이다. 그런 중국이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의 두드러진 공조 분위기 속에서 전례 없이 강한 압박을 가해왔다. 북한으로선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뒤돌아보면 '한반도 위기설'이 고조된 지난 4월은 북한한테도 힘든 한 달이었을 것 같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 가능성이 큰 시기로 꼽히는 태양절(김일성 생일)과 창군절이 열흘 간격으로 끼어 있었다. 미국은 '예방적 타격설'을 흘리면서 핵 항모 전단까지 동원해 북한을 압박했다. 이렇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물자가 부족한 북한은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매년 치러지는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까지 나서 원유공급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북한을 짓눌렸다. 험난했던 4월이 남긴 고통과 당혹감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이 바로 이번 논평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 며칠 전 외무성 담화에서 "정세가 또 한차례 고비를 넘겼다"고 밝힌 것에서, 그렇게 되기를 내심 바라는 북한의 속내가 읽히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런데 중국의 응답은 곧바로 나왔다. 창구는 이번에도 관영 인민일보의 영문 자매지인 환구시보였다. 이 신문은 4일 인터넷판 '환구망'에서,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비이성적 사고에 빠져 있다면서, 맞설 것 없이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레드라인이 어디까지인지,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어떤 강력한 조치를 할 것인지만 알리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 신문은 이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는 '중·북 상호원조 조약'에 위배되며, 따라서 북한 핵무기로 긴급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중국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재차 경고했다. 미국도 대북 압박을 조금이나마 풀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3일(이하 현지시간) 한 연설에서 "우리의 대북 전략은 현재 20% 내지 25% 수준에 있다"면서 "지속해서 압박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여기에다 미 하원은 4일 북한의 핵무기 개발자금 차단에 초점을 맞춘 새 대북제재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 통과가 확실시되는 이 법안에는 원유와 석유 제품의 대북 판매·이전 금지, 외국 은행의 북한 금융기관 계좌 보유 금지 등이 들어가 있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법안 상정에 즈음해 "김정은의 지갑을 쥐어짜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난 '4월의 고난'은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북한도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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