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엔 노인만 산다구요?" 산골마을에 생긴 어린이회

입력 2017-05-05 09:07  

"농촌엔 노인만 산다구요?" 산골마을에 생긴 어린이회

옥천 안터마을 청정환경 끌린 젊은층 유입 뒤 아이들 '북적'

노인회·부녀회 이은 3대 자치기구…어른에게 당당히 금연 요구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 동이면 안터마을은 대청호 연안의 작은 산골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젊은층이 도시로 떠난 뒤 노인들만 남아 쓸쓸하게 농사짓던 곳이다.





그러던 마을에 10여년 전부터 젊은층이 하나둘 유입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깨끗한 자연환경에 이끌려 들어온 젊은이들이 호수와 산림을 활용해 여러 가지 공동체 사업에 나서자 침체됐던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주민들은 겨울마다 두터운 얼음으로 뒤덮이는 마을 앞 호수에서 빙어낚시와 썰매를 즐기는 겨울문화축제를 연다. 2009년 시작된 축제는 이 마을을 중부권 최대 빙어 낚시터로 탈바꿈시켜 한해 10만명 넘는 인파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보리가 익는 5월 말부터 한 달 가량 마을 뒷산에서는 반딧불이가 펼치는 황홀한 군무도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이달 28일부터 보름 동안 여덟번째 반딧불이 축제가 열린다.

전직 이장인 오한흥(59)씨는 "대청호 수질보전 특별 대책지역으로 묶여 있으면서 잘 보존된 환경과 오랫동안 방치돼 습지로 변한 논 등이 반딧불이 서식에 좋은 환경이 됐다"며 "청정환경은 우리 마을의 경쟁력이자, 최고의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이런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2011년 농업법인 ㈜안터마을을 설립, 본격적으로 수익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겨울문화축제를 더 짜임새 있게 확대했고, 여름방학에는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손잡고 장승깎기 캠프를 연다. 김장철이 되면 도시민을 초청해 자체 생산한 배추와 무로 김장 담그는 행사도 마련한다.

그러는 사이 전입 가구도 차츰 늘어나 2011년 31가구였던 마을 규모는 70여 가구로 2배 이상 커졌다.

이 마을 전입자 대부분은 젊은층이다. 이들이 들어오면서 황량했던 마을은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떠들썩해졌다.






현재 이 마을에 사는 초등학생은 20명이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통학버스 2대를 배차해 학생들을 수송할 정도로 수가 불었다.

2년 전에는 도심 주택가에서나 볼 수 있던 어린이놀이터까지 마을 복판에 떡하니 들어섰다.

마을의 활력소로 등장한 귀염둥이들이 최근 어른들을 웃음 짓게 하는 '깜찍한 일'을 저질렀다. 초등학생이 주축이 돼 어린이회를 조직한 것이다.

박효서(52) 이장은 "올해 초 초등학생 몇몇이 찾아와 '어린이회를 만들겠다'고 통보하더니 최근 회장을 선출하고 회칙도 정했다고 전해왔다"며 "노인회, 부녀회에 이어 우리마을 3번째 자치기구가 탄생한 것"이라고 반겼다.

어린이회는 일단 초등학생 위주로 만들어졌다. 형이나 언니를 따라나선 유치원생도 준회원 자격으로 참여한다.

초대 회장을 맡은 최수림(12) 양은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 필요해졌다"며 "학교버스에 동생들을 먼저 태우고, 놀이터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담아 생활규칙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른들은 마을회관에 어린이 공부방을 설치하고,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마을 앞 공터에 물놀이장도 만들어줄 계획이다.

최 양은 "어린이회에서 공부방 운영을 맡는 것으로 어른들의 허락을 받았다"며 "공부방 운영규칙을 정해야 하고, 수영장을 어떻게 꾸밀지도 상의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아졌다"고 즐거워했다.







어린이회 생활규칙 등이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의 다툼은 눈에 띄게 줄었다.

놀이터 바로 옆에서 생필품 가게를 운영하는 이규선(48·여)씨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싸우거나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는데, 어린이회가 생기면서 놀이터 분쟁이 사라진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은 흐뭇하기만 하다.

박 이장은 "최근 어린이회장이 회관에 찾아와 '신고식'을 하면서 놀이터 주변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등 이런저런 요구를 많이 하고 갔다"며 "귀엽고 당돌하면서도, 자치규약을 만들어 실천해가는 모습이 대견해 마을 운영의 파트너로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bgi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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