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울려 재난 상황 제대로 못 들어…집 안에 있으면 '깜깜'
아산·청주 가구별 스피커 설치 추진…재난문자 적극 활용 목소리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강원 삼척과 강릉의 화마가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민가마저 집어삼켰다.
민가 30여채가 불에 타고, 300여명이 긴급 대피할 정도로 엄청난 기세의 산불이었지만 주민들은 제때 대피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가까지 덮칠 정도로 불길이 급속히 번지는데도 당국이 재난상황을 제대로 전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초기에 '대형 산불'이 아니어서 긴급 재난문자 송출을 하기가 애매했다"며 "마을별 재난방송을 통해 산불 상황을 알렸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 중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국의 이런 대응에 불만을 쏟아냈다.
산불이 밤에도 꺼지지 않은 채 급속히 확산하는 상황에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관공서에서 제공받은 정보는 '웅웅' 거리며 울려대 내용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마을방송뿐이었고, 결과적으로 대피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불길이 번지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해 당황했다. 스마트폰에 의존해 언론이 전하는 뉴스 속보를 통해서야 겨우 산불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당국은 마을방송을 통해 산불 상황을 알렸기 때문에 적절하게 전파했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마을방송에만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효과적인 정보 제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난방송은 산불이 났을 때뿐만 아니라 건조, 미세먼지, 호우, 폭염 등 다양한 특보가 발령될 때마다 마을회관 스피커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국민안전처나 기상청에서 발령하는 특보를 각 마을로 전달하는 재난방송시스템이 일선 시·군에 구축돼 있다. 재난·안전 담당 공무원이 이 시스템을 통해 대상 지역을 선택하면 해당 마을방송으로 재난 상황이 일괄 송출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재난방송이 나가면 여지없이 행정기관에 전화가 쇄도한다. "뭔가 조심하라는 것 같은데 방 안에 있어서 잘 듣지 못했다"거나 "웅웅거리기만 해서 내용을 도통 알 수가 없다"며 방송 내용을 다시 알려달라는 전화다.
건축 자재의 방음 성능이 좋아지면서 실내에 있는 주민들은 아예 마을방송을 듣지 못한다. 밖에 있어도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방송 내용이 불명확하게 전달되기 일쑤다.
강릉과 삼척 산불을 삽시간에 번지게 한 강풍이라도 불 때는 마을방송이 제구실을 못 한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강릉의 한 마을 이장은 "시골이어서 공지 사항을 주로 방송으로 알리는데, (주민들이) 순간적으로 못 듣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장들도 "상황이 급박한 재난상황을 전파하고, 신속하게 대피토록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재난이 발생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을 때 주민들에게 상황을 긴급히 알려 인명·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외 스피커에 의존하는 마을방송이 사실상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시도되고 있지만 적지 않은 재원 부담 때문에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충남 아산시는 작년부터 마을방송 설치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450개 농촌 마을의 집집마다 스피커를 설치해 재난 상황을 신속히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19억원을 들여 450개 마을 중 180개 마을을 대상으로 한 송신기 설치와 가구별 스피커 설치 작업을 마무리한 데 이어 올해 1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오는 2019년까지 이 사업을 추진하면 전체 마을 주민들이 안방에 앉아서 재난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충북 청주시도 이 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마을 스피커를 통해 재난방송을 하는 청주시의 마을은 모두 698곳, 4만4천853가구이다. 이 가운데 저지대나 댐·저수지 하류 마을 등 38곳, 2천494가구는 재난 취약마을이다.
재난방송을 듣지 못했다거나 내용을 잘 모르겠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청주시는 가구별로 스피커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야외 방송으로는 제대로 전파되지 않는 심야 시간대에 발생하는 각종 재난에서도 인명 피해를 막는 것도 가능해진다.
문제는 돈이다.
청주의 698개 마을에 송·수신기와 가구별 스피커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162억5천만원이다. 예상되는 연간 유지비도 12억2천만원으로 만만치 않다.
청주시는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하거나 특별재난교부세를 확보해 재난 취약지구부터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기적으로 충북도 예산 지원을 받아 재정 부담을 덜겠다는 생각도 한다.
시 관계자는 "재난정보를 스피커를 통해 각 가정으로 전달한다면 신속한 조처가 가능해 인명·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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