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서 '숙명'으로…5년 이어진 文 대권재도전 '대장정'

입력 2017-05-10 00:19   수정 2017-05-10 06:06

'운명'에서 '숙명'으로…5년 이어진 文 대권재도전 '대장정'

히말라야 등정 떠나며 "비우고 채워서 돌아오겠다"…탄핵정국서 '촛불민심'과 함께

대선 경선서 안희정·이재명 제쳐…본선서 '대세론' 유지하며 '승기'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5년 전 대선이 나에게 운명이었다면, 이번 대선은 숙명이다."

문재인 당선인이 두 번의 대선 도전 만에 '대통령직'이라는 숙명의 과제를 받아 안게 됐다. 2012년 대선에서 석패한 뒤 5년이 지나 다시 도전한 9일 대선에서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문 당선인은 2012년 대선 이후부터 쭉 야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꼽혀왔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정치신인'이 받았던 48%의 대선 득표율은 고스란히 문 당선인의 자산이 됐다.

하지만 부침도 겪었다. 2015년 2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박지원 후보(현 국민의당 대표)와 치열하게 맞붙는 과정에서 '호남홀대론', '대북송금특검 공방' 등이 터져 나와 당내 깊은 상흔으로 남았다.

대표로 선출됐지만 이후 주류-비주류간 갈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안철수 당시 의원의 탈당사태가 벌어지면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 당권을 넘겨준 뒤 치른 지난 4·13 총선에서 원내 1당으로 올라서면서 대선가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같은 해 6월 한 달간 일정으로 히말라야 등정을 떠났다. "비우고 채워서 돌아오겠다"는 그의 말은 대선 도전을 위한 '암시'로 읽혔다.

문 당선인이 대선주자로서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의혹들이 점점 입증되기 시작한 10월께부터였다.

그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탈당과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며 정국 수습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더욱 명확해지고 국민의 분노가 광장의 촛불로 분출되면서 문 후보 역시 여기에 보조를 맞추며 퇴진 운동의 중심에서 국민과 함께했다.

결국 그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조기대선이 확정됐다.

야권의 '잠룡' 선두주자였지만, 문 당선인은 당내 경선에서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과 겨뤄야 했다.

같은 '친노'(친노무현)의 뿌리를 가진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연정'으로 상징되는 '통합 리더십'을 강조, 중도·보수 표심을 흡수하면서 문 후보를 추격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남에서 거둔 시정 성과와 촛불광장에서 빛을 발한 특유의 '사이다 화법'을 무기로 문 후보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준비된 후보론'을 내세운 문 후보는 후발주자들을 멀리 따돌리고 득표율 57%로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으면서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본선 싸움은 더욱 치열한 '혈전'이었다.

특히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직후, 범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문 후보에 대한 안보 공세가 거세게 일었다.

선거운동 시작 뒤 첫 후보 공동토론회에서 터진 '북한 주적논란'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쪽지' 공개로 2007년 유엔(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과정에 대한 진실공방이 시끄럽게 전개됐다.

하지만 문 후보는 "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치한 위협이 되는 적이 분명하지만, 각 부처가 북한을 대하는 입장은 달라야 한다"라고 주적 공방을 정면 돌파했고 송 전 장관의 쪽지 공개 사건을 '제2의 NLL 사건'으로 규정, 법적조치를 불사하며 흔들림 없는 태도로 밀고 나갔다.

안 후보 측을 중심으로 아들 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채용 의혹을 거세게 제기했지만 문 후보는 "이미 설명이 끝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안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추격전이 벌어졌지만,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안 후보의 경우 민주당 경선이 끝난 직후 안 지사를 향했던 중도·보수 표심을 흡수하면서 문 당선인과의 지지율 격차를 오차범위 내까지 좁히며 상승세를 탔지만,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고 후보 토론회가 본격화하면서 동력을 살리지 못했다. 문 당선인이 직접 영입했으나 갈등 끝에 탈당한 김 전 의원도 안 후보를 지원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홍 후보는 문 당선인이 집권하면 좌파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된다는 주장으로 좌우 진영의 대결로 전선을 치면서 일부 보수 결집 흐름을 형성하는 듯했지만, 잇단 '막말 논란'을 일으키면서 일부 유권자들의 신임을 잃었다.

문 당선인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1만600km를 이동하면서 전국을 누볐다.

마지막 유세가 펼쳐진 광화문 광장에서 그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정농단을 일삼고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권력, 예술가들 영혼을 블랙리스트에 가둬버리는 권력은 더 이상 없다"라고 선언, 마지막 지지를 호소했다.

문 후보는 대대적인 대선출마 선언 행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유권자가 참여해 만든 출마선언 동영상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다. 특별한 '선언'의 계기가 아니었더라도 지난 5년간 걸어온 길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였고, 이제 그 준비한 국정 계획을 펼칠 때라는 것이 문 당선인 측의 설명이다.

hrse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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