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의무 게을리해 출제 오류 후 후속조치도 미흡"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법원이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과목 출제 오류와 관련,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국가가 당시 오답 처리된 수험생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유는 뭘까.
1심 판결을 깨고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준 부산고법 민사합의1부(손지호 부장판사)는 1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과정은 물론 이의처리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불법행위를 저질러 피해를 본 수험생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출제·검토위원들은 교과서에 기술된 유럽연합과 북미 자유무역협정의 총생산액 비교우열이 당시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2009년 통계에 따라 기술된 교과서 내용이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믿고 명백하게 틀린 지문이 포함된 문제를 출제하고 정답을 결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판단했다.
출제 단계에서 통계 수치를 확인했더라면 지문에 나타난 오류를 발견해 수정할 수 있었는데도 통계 수치를 확인하지도 않고 2009년 통계가 반영된 교과서 내용만 믿고 틀린 지문을 출제한 것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평가원이 이의처리 단계에서도 과실을 범했다고 봤다.
수능시험 직후 '출제 오류가 있다'는 이의제기가 나왔고 이의심사실무위원회에서 실무위원으로부터 "문제 지문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는데도 평가원은 무시했다.
평가원은 출제와 정답 결정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에 자문했고 이들 학회는 하루만에 "오류가 없다"는 의견을 평가원에 제출했다.
당시 수험생 94명은 '정답 결정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이 "출제 오류가 있다"고 판결한 후에야 평가원은 오답 처리된 수험생들의 성적을 재산정하고 추가합격 같은 구제조치를 했다.
재판부는 "평가원이 문제 출제 오류를 범한 직후에 이의처리 과정에서라도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수험생들에게 더 큰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라며 "항소심 판결에 따라 1년 만에 추가 합격 같은 구제조치가 내려졌지만 수험생들은 대입 실패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1년 간의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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