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환 씨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돼"
(원주=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40년간 계속된 상지대 민주화 투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 조연출을 맡은 박주환(31) 씨의 말이다.
그는 상지대 행정학과 졸업생이다.
군복무 후 복학한 2012년 총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전공과는 무관한 이 일에 참여한 것은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상지대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다큐 영화를 제작키로 하고 다큐 영화 제작사 '다큐인'에 제작을 의뢰하면서 박 씨를 추천했다.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2009년부터 학내서 일어난 분규현장을 틈틈이 카메라로 기록해온 점이 크게 어필했다.
그는 "학교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형성돼 있어서 출연 섭외를 하거나 촬영을 하고 자료를 찾는데 수월하다는 점이 고려된 것 같다. 영화 작업이 잘 돼 상지대 사태의 본질이 널리 알려져 학교가 조속히 정상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씨가 학내에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든 것은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2009년 2학기부터.
2005학번으로 입학했을 때만 해도 상지대는 김문기 전 이사장이 부정입학 등 혐의로 구속돼 이사장에서 퇴진한 뒤 다시 복귀를 노리고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겉으로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군 복무를 하고 다시 복학한 2009년 학내 분위기는 달랐다.
김문기 씨 복귀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천막 농성이 시작됐다.
박 씨는 "평소 카메라 촬영에 관심이 있어 용돈을 모아 동영상 카메라도 사고 영상제작 프로덕션에서 촬영교육도 받은 적이 있어 집회와 천막 농성 등을 촬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0년 8월 집회 중 입학 동기인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쟤들은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나…'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에 2012년 보궐선거에 출마,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직접 투쟁에 나섰으나 후임 총학생회 구성도 못 한 채 2013년 졸업했다.
모 장학재단에 취업했으나 2014년 8월 김문기 씨 총장 복귀로 학교 상황이 심각해졌다.
학교 측은 비리재단 복귀 투쟁을 주도했던 정대화 교수(정치학)를 파면하고 2014, 2015년도 총학생회장·부총학생회장을 2년 연속 무기정학에 처했다.
후임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나와 미안한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을까?' 고민하다 부끄럽지만,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김문기 씨 측 교직원들이 집회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고 데모나 하니 졸업하고 취직도 못 하고 저런 일이나 한다'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줄 때 가장 힘들었다"고 박 씨는 말했다.
그는 "누군가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그것을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진실로 남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80년대와 90년대 학교에 다녔던 선배님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정말 많은 분이 상지대학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교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공익적인 역할과 기능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 내용을 압축했다.
다큐 영화 '길'은 지난해 6월 제작에 들어가 지난달 촬영을 끝내고 오는 12일과 15일 서울과 원주에서 시사회를 가질 예정이다.
ryu62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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