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부부로 출연하는 에마드와 라나 부부는 살던 아파트 건물이 흔들려 붕괴 위험에 처하자 동료의 도움으로 새 아파트에 임시로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라나가 집에서 혼자 샤워하려던 중 벨이 울리고, 남편이 온 것으로 생각한 라나는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고 문을 열어준다.
얼마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은 계단에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한다. 욕실에서 샤워하다 낯선 남자의 침입을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내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아내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날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으면서 경찰 신고도 거부한다. 지하 주차장에서 범인이 몰고 온 트럭을 발견한 남편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세일즈맨'은 스토리텔러의 대가로 불리는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사회 속 인간의 커다란 딜레마를 담길 원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급변하는 이란의 현실을 배경으로 삶의 거대한 인과관계가 빚어낸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딜레마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관찰한다.
이사 온 집의 전 주인이 문란한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이웃들의 오해와 불쾌한 시선에 굴욕감을 느끼면서 복수심에 불타 범인을 찾아 나선다. 자신에게 집을 소개해 준, 호의를 베푼 동료에게 분풀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범인을 마주하게 된 주인공은 그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자 복수와 용서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급격한 변화 속에 흔들리는 이란의 현실을 집약해 보여준다.
주인공 부부가 살던 아파트가 흔들리고 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금이 간 창문 밖으로 포크레인이 땅을 파는 공사현장이 비친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가족이 겪게 될 균열을 예고하기도 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실제 삶과 그가 연기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병치 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연극과 실제 삶은 평행을 이루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세일즈맨과 그 부인을 연기했던 부부가 실제로 세일즈맨과 그 가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연극과 실제 삶의 경계가 허물어져 하나가 된다.
감독은 "연극과 시나리오의 주제가 마치 거울처럼 매우 비슷했다. 둘 다 '굴욕'과 '경멸'이라는 주제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또 "갑작스러운 변화로 특정 사회 계급의 파멸을 초래했던 시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담겨있다는 점은 연극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급속도로 변하는 현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망가졌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이란의 현재 상황과도 강력하게 맞물린다"고 말했다.
'어바웃엘리'(2009),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과 황금곰상을 잇따라 수상한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이 작품으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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