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경마 승부조작 사범을 과거 경력 이유로 '조폭수용자' 지정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경찰 관리 대상 조직폭력배가 아닌데도 구치소가 임의로 '조직폭력 수용자'로 지정했다면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들여 지정을 해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조폭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과거 한때 조폭이었다는 이유로 구치소가 딱지를 붙인 건 차별대우라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이진만 수석부장판사)는 A씨가 서울구치소장을 상대로 "분류 처우 개선 신청을 받아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3월 말 경마 승부를 조작한 혐의(한국마사회법 위반 등)로 체포돼 서울구치소에 구금됐다. 체포영장 범죄사실엔 지방의 한 조폭 부두목급 조직원으로 명시됐다. 구치소는 이를 근거로 A씨를 조폭 수용자로 지정했다.
A씨 변호인은 조폭 수용자 지정 해제를 신청하려고 관할 경찰서에 A씨가 관리 대상 조폭 계보에 포함됐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확인을 거부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실형을 확정받자 이번엔 국민권익위원회에 자신을 조폭으로 분류하지 말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서울구치소는 이에 "형집행법 시행규칙상 체포영장 등에 조직폭력 사범으로 명시된 수용자는 조폭 수용자 지정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는 답신을 보냈다.
구치소는 "경찰에서 현재 조직폭력원으로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공문서를 제출하면 적극 참고하겠다"고 덧붙였다.
A씨는 조직폭력 사범이 아닌데도 부당 지정됐다며 구치소 측이 신청을 거부한 건 위법하다고 소송을 냈다.
구치소 측은 "조폭수용자 지정으로 직접적인 권리 제약을 받는다고 할 수 없는 만큼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맞섰다. "형집행법 시행규칙에 따라 A씨를 조폭 수용자로 지정한 것일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구치소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직폭력 사범은 다른 수용자와의 접촉을 차단하거나 계호를 엄중히 할 수 있고, 거실이나 작업장에서 반장 등 수용자 대표 직책을 맡지 못한다"며 일반 수용자와 다른 처우를 받는 만큼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만약 이 사안이 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실제 조폭사범이 아닌 경우 합리적 이유 없이 불이익을 받게 되고, 다른 색깔의 표식을 달게 됨으로써 인격적 이익을 침해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조폭 딱지'를 붙이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형집행법과 그 시행규칙상 조폭 지정 대상도 수감된 범죄가 조직폭력범죄에 해당하거나, 범죄 당시 폭력조직에 가담 중인 경우 등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경찰이 관리하는 조폭이 아니고, 조직폭력범죄로 수감된 것도 아닌 만큼 체포영장 내용만으로 조폭 수용자로 지정하는 건 허용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형집행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수용자가 차별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며 "수용자가 과거 한때 조직폭력 사범이었다는 이유로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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