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흡연 심각] 3∼5명씩 걸으며 담배 피워도…"겁나서 항의 못해요"

입력 2017-05-14 07:11  

[보행흡연 심각] 3∼5명씩 걸으며 담배 피워도…"겁나서 항의 못해요"

"간접흡연 피해 심각" vs "흡연권 보장돼야"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여기를 지나갈 때에는숨을 꼭 참고 지나갑니다. 야외인데도 이곳만 지나가면 담배 냄새로 찌든 PC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불쾌해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 D타워 앞에서 만난 윤모(38)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주변 인도에는 20~30명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3~5명씩 무리를 지은 남성 흡연자들이 저마다 일회용 커피잔을 하나씩 들고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곳을 지나가던 사람 중에서는 연기를 맡기 싫은 듯 코를 막거나, 아예 '흡연족'을 피해 인도 대신 차도로 걸어가는 무리도 눈에 띄었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길거리나 광장, 공원 등 실외 금연구역 시설은 1만7천여 개다. 실내 금연구역은 서울 시내에만 24만 개에 이른다.

또 금연구역 정책 확대에 따라 실외 금연구역 지정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10만 원이 부과되고, 담배꽁초를 무단 투기하는 경우에도 과태료를 물게 된다.

하지만 정작 보행 중 흡연에 대해서는 사실상 별다른 단속 규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금연구역이 아닌 야외 도로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단속을 피해 아예 걸어가면서 흡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오피스 건물이 몰려있는 청진동 일대 역시 D타워 주변처럼 길거리 흡연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 흡연자는 기자가 말을 걸자 "근처에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거리를 피해 비(非)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것도 잘못이냐"며 강하게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고층 건물 관리인은 "건물 주변에 '금연'이라고 안내판을 붙였는데도 점심시간이면 골목길 전체가 '너구리 소굴'이 된다"며 "건물 근처에서 몰려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내가 가서 쫓아낼 수 있지만, 담배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까지는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중랑구 신내동에 사는 주부 이모(35)씨는 "딸이 7살인데 흡연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쥐고 있는 손의 높이가 딸의 키와 비슷하다"며 "보행 중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한소리 하고 싶지만 대부분 걸어가며 피우는 사람들이 남성들이어서 강하게 항의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던 여성이 길거리에서 흡연한 남성을 말리다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현상이 금연구역만 늘린 정부의 '정책 실패 탓'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실제로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도심 흡연구역은 40여 개에 그친다.

흡연자들은 일본처럼 흡연구역 확대 등을 통해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흡연자들에게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원 김모(49)씨는 "일할 때마다 담배를 피우며 한숨 돌리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회사 건물 전체가 금연인 데다 별도의 흡연구역도 없어 출근길이나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보행흡연'을 하게 된다"며 "나라에서 담뱃세도 많이 가져가면서, 그 돈으로 흡연구역을 늘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다른 회사원 전모(32)씨는 "지금은 흡연구역이나 금연구역 어느 쪽도 아닌 일반 도로의 경우, 흡연자는 '흡연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비흡연자는 '왜 여기서까지 담배를 피우나'라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므로 갈등이 불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씨는 "정부가 흡연구역이 아닌 모든 곳은 '금연구역'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도록 해야 하고 이런 전제하에 흡연구역을 적절히 늘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흡연구역이 40여 개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파악되는 것만 그렇고, 건물이나 음식점 등에서 자체적으로 야외에 만든 경우 등까지 포함하면 흡연구역이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며 "흡연 부스 확대는 오히려 흡연을 조장할 수 있어 금연 정책에 역행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버스나 비행기 내 흡연이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된 것처럼, 지속적인 금연정책 추진으로 길거리 흡연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게 될 것"이라며 "다만 담배를 피우는 시민들이 아직은 금연정책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당분간은 양쪽이 상생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달 말까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흡연시설 디자인 공모전을 했으며, 심사 후 선정작을 발표해 실제 설치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sh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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