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문재인 정부 출범 공동 제안
신기욱 소장 "당장 파견하진 않더라도 특사 임명해 대북정책 집중ㆍ간소화해야"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문재인 정부는 미국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과거 '페리 프로세스'를 본뜬 새로운 대북 특사를 임명해야 한다."
스탠퍼드대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센터(APARC) 소속 저명 한반도 전문가들은 15일(한국시간) 한국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내놓은 공동 제안문에서 문재인 대통령 정부 출범을 '낙관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이같이 촉구했다.
2008∼2011년까지 주한 미 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개인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한국의 새 정부는 조속히 미국 정부와 회담 일정을 세우고 광범위한 주제와 관련해 논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기욱 센터 소장(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 회담을 한 것을 언급하면서, "문 대통령이 조속히 이를 따라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 정부가 하루빨리 국무부와 국방부의 아시아 정책 관련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는 것이 대북정책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특히 1999년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제안했던 페리 프로세스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적절한 모델이었던 것으로 평가하면서 "문 대통령의 대북 포용 정책이 '적절한 시기에', '대북 특사의 지휘 아래' 이뤄진다면 올바른 방향으로의 진전이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신 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북 특사를 통한 패키지 대북 문제 해결방안인 페리 프로세스는 사실상 임동원 프로세스였다"면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한국형 페리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ㆍ중ㆍ일ㆍ러와 유럽까지 5강 특사가 임명됐지만 정작 중요한 북한 특사는 빠진 것 같다"며 "당장 특사를 북한에 보내자는 것이 아니라, 대북 문제를 전담할 특사를 임명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큰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공동 기획한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이 핵 개발 중단 조치를 하면 미국 등 관련국들이 단계적 보상을 하고 체제를 보장하지만, 거부할 경우 강력한 조처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포괄적 대북 제안이다. 그러나 2000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폐기됐다.
스티븐스 전 대사와 신 소장은 한국 정부가 대북 특사를 임명하면 현재 수십 개로 나눠진 정부기관의 대북 활동을 중앙집중화하고 간소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이런 입장을 세우고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북핵 위기의 규모는 한국 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방식, 국내 컨센서스를 이뤄 국제 사회의 노력을 끌어내는 방식을 재구성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핵 전문가인 지그프리트 해커 교수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이 최근 수개월 동안 계속 진보하고 있으며 14일에도 러시아 인근 해상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6번째 핵실험을 감행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도발적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신뢰 구축 및 협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간 철저한 공조만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센터 선임연구원인 해커 교수는 문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김정은과의 회담, 개성공단 재개, 남북 접경지역 공동경제구역 등의 언급을 한 것을 열거하면서 "그러나 평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워싱턴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토머스 핑거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대북정책 수립에 앞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피하려고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중국 정부로서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나 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서울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 차관을 지낸 마이클 아마코스트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정책과 관련해 조기에 실적을 내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첫 조치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며 "신속한 일 보다는 올바른 일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태연구센터 측은 연합뉴스에 "공동 제안은 전문가들이 각자 의견을 개진한 뒤 서로 '공감'하는 형태로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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