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수사기관이라는 인식 바꿔야…기소·공소유지에 주력"
"수사와 분리된 기소 판단으로 과잉·불법수사 견제…국민 기본권에 기여"
권력형 비리 수사는 공수처가 담당…법 개정·개헌 추진·여론 등이 관건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공약이 이행되면 60년 넘게 유지된 수사지휘권이 사실상 폐기되는 등 검찰 권한이 대폭 축소되고 형사사법 체계가 크게 바뀌는 등 대대적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력형 비리를 전담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의 힘과 권한을 분산하는 조치도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등 제한적인 업무를 담당할 수 있으며 이런 가운데 스스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다만 제도 변경에 따라 수사 기능을 넘겨받은 기관들이 부여된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따라 애초 구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 수사지휘권·영장독점 청구권 폐지 수순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형 집행권 등 형사소송과 관련한 독점적 권한을 행사해 온 검찰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새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큰 틀이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는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이 독점한 일반적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다는 구상이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때부터 검사의 사법경찰관 수사 지휘가 명문화돼 있었는데 이제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독점한 영장청구 권한을 경찰에게 부여하는 방안은 개헌이 필요한 탓에 문 대통령의 공약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장기 과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현행 헌법 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검찰개혁 구상을 담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년)를 문 대통령과 함께 썼고 선거 때 캠프에도 몸담았던 김인회(53·사법연수원 25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영장청구 독점 규정이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에서 만들어진 방안으로 선진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 규정은 1962년 12월 개헌으로 도입됐다.
김 교수는 검찰개혁 공약이 "행정부나 입법부 단위에서 가능한 것을 명시했고 영장청구는 개헌에 관한 것이므로 국민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면서도 "개헌 때 충분히 논의해서 (검찰의) 영장청구권 부분이 빠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의견을 밝혔다.
◇ 권력형 비리 수사는 공수처로
검찰이 존재 이유로 꼽았던 고위공직자 비리 등 이른바 '거악' 척결 기능의 상당 부분은 신설될 공수처의 몫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눈치 보기 수사 논란, 스폰서 검사 파문, 그랜저 검사, 진경준 검사장 뇌물수수 의혹 등 잇따른 문제를 둘러싼 비판이 고조하면서 대선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 수사를 검찰이 아닌 독립된 기구가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
20대 국회에는 상설특검법과 유사한 공수처 설치 법안 3건이 이미 발의돼 있으며 향후 처리 과정이 주목된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주요 정치인, 판·검사, 주요 기관의 고위 공무원 등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해 기소한다.
과거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권력형 비리를 전담했고 중수부 폐지 후에는 검찰 특별수사본부 등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이제 제3의 기관이 이를 맡는 셈이다.
대기업 경영자나 재벌 총수 등이 민간 영역에서 저지른 비위와 관련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기관의 역할이 확대될 전망이다.
◇ 검찰 역할은 기소와 공소유지…관련 입법·개헌 등 주목
검찰의 역할은 기소와 공소유지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경찰을 비롯한 다른 기관의 수사를 감시 또는 지휘하는 것이 준사법기관이며 이는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의 역할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역할 역시 기본적으로는 기소권의 행사를 통해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새 정부의 기조로 풀이된다.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 여부를 더 엄정하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찰의 과잉 수사나 불법수사 등을 견제함으로써 검찰이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검찰은 다만 공소유지를 위한 보충적인 수사권을 허락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사안에 관해 검찰이 경찰 수사를 보완하는 방안은 유지될 수 있다.
김인회 교수는 "미국은 중대 범죄의 경우 기소 이전에도 검사와 경찰이 상호 원만한 협조를 통해서 사건을 쉽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절차를 갖고 있다. 양 기관의 협조는 업무 분장을 통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수사기관이라는 인식 자체를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상훈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기본적인 수사는 경찰 또는 공수처가 하고 수사가 적법한지 인권 침해적인 요소는 없는지 따져 기소하거나 공소 유지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사 이후 단계에서 감시하고 살펴보는 역할이며 필요한 경우 기소 전에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검찰개혁의 실현은 형사소송법 개정 및 공수처 설치법 등 입법 절차와 개헌 등을 통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의 논의, 국민 여론, 새 정부의 추진 의지 등이 개혁의 범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 변경된 제도 시행 초기 경찰의 독자 수사 능력이나 공수처의 성과 등이 어떠하냐에 따라 검찰개혁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