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정회성 기자 = "수학여행 다녀오다가 군인들한테 끌려가서는 죽도록 맞고 돌아왔어. 그 뒤로 지금껏 정신병원에서 지내는데 이제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이빨도 다 빠지고 없어."
1980년 5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아들을 떠올리며 A(83·여)씨는 눈물을 삼켰다.
17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A씨는 남편 묘소를 돌보며 한 맺힌 지난날을 떠올렸다.
A씨에게 1980년 5월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이다.
6남매의 아버지였던 A씨 남편은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전남대학교 인근 하천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내던져진 채 발견됐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일평생 병원을 전전했던 남편은 9년 전 세상을 등졌다.
5·18 당시 버스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금남로 행진에 나섰던 버스 대열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게 끌려갔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목에서 붙잡혀갔던 A씨 큰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모진 구타를 당했고,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느냐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다"라며 "하늘나라에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5·18 민주화운동 37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5·18민주묘지에는 저마다 가슴 깊이 상처를 지닌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엄마 왔다. 잘 살았냐"며 소복 차림으로 털썩 주저앉은 노파, 묘비에 기대 먼 산만 바라보는 노인.
이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추모객도 37년 전 5월의 기억이 가슴 시리기는 마찬가지다.
추모객 정채홍(52)씨는 "5·18 때 북성중학교에 다니며 횃불 들고 행진하던 대학생 형들을 보곤 했다"며 "그들과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고 지금까지도 죄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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