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오픈 프로암 대신 주니어 선수에 필드 레슨
(인천=연합뉴스) 권훈 기자= "어휴, 내가 낼모레면 시니어 투어 갈 나이여. 너네들, 금방 마흔 살 된다. 열심히 해라"
17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하늘코스 1번홀 티잉그라운드.
한국 골프의 간판 최경주의 농담에 남녀 고교생 둘은 굳었던 얼굴이 살짝 펴졌다.
최경주는 국가대표 김동민(대구 영신고3년), 이소미(광주 금호중앙여고3년) 두 명의 '꿈나무'와 동반 라운드에 나섰다.
18일부터 나흘 동안 이곳에서 열리는 한국프로골프투어(KGT) SK텔레콤오픈이 프로암 대신 마련한 행사다. 정식 명칭은 행복나눔 라운드.
프로 골프 대회 프로암은 주최 측이 저명인사나 거래처 접대 기회로 활용하는 게 통례지만 SK텔레콤은 한국 골프의 미래를 짊어질 주니어 선수들이 정상급 투어 프로 선수에게 배울 기회를 주기 위해 멘토 라운드를 기획했다.
최경주를 비롯한 투어 프로 선수 30명은 각각 2명씩 주니어 선수를 데리고 18홀을 돌았다.
주니어 선수 60명은 남녀 국가대표 선수와 대한골프협회 시도지부에서 추천받아 정했다.
이소미는 최경주의 고향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자란 인연으로 최경주 동반 파트너로 낙점받았다.
1998년생 이소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최경주 경기 모습을 TV에서 보고 골프 선수가 되려고 마음먹었다"고 최경주와 동반 라운드가 꿈만 같다고 말했다.
올해 국가대표가 된 김동민은 전날 낮에 최경주와 동반 라운드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밤잠을 설쳤다.
김동민의 부친 김정식(52) 씨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하늘 같은 대선배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둘은 최경주의 자상한 지도와 걸쭉한 입담에 홀을 거듭할수록 긴장을 풀고 실력을 발휘했다.
최경주는 "아이들 실력이 엄청나더라. 왜 우리 주니어 선수들이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지 알겠더라. 나도 설렁설렁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 바짝 차리고 쳤다"면서 "기술적인 것이야 어느 정도 완성된 듯해서 골프인으로 나아갈 길과 몸가짐 등을 많이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김동민은 "역시 차원이 다르더라"면서 "그립 잡는 법을 다시 한 번 일러줬고 경기에 임하는 정신자세에 대한 말씀이 가슴에 특히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멘토 라운드에 참가한 주니어 선수들은 우상이던 투어 프로와 동반 라운드에 처음엔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전반 9개 홀을 끝내자 입이 귀에 걸렸다.
김비오와 함께 경기에 나선 성지은(낙생고)은 "너무 잘 생기고 멋지다"고 살짝 '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타자 김태훈과 멘토 라운드를 치른 박종웅(대전 신흥고)은 "프로님이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게 너무 좋았다"면서 "평생 못 잊을 기회"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에이스 장승보(한체대)는 "오늘 함께 친 허인회 선배께서 쇼트게임을 집중적으로 전수해줬다"면서 "이런 기회가 더 많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프로 선수들도 멘토 라운드가 색다르면서 값진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훈은 "프로암에서도 동반자들에게 레슨을 해주지만 전문 선수가 아니니 한계가 있다"면서 "주니어 선수들에게는 뭘 가르쳐도 쏙쏙 빨아들이니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내일 경기를 대비한 연습은 뒷전이었고 주니어 선수들 가르치는 데 주력했다"는 허인회는 "이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좋은 기획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과 미국에서 두루 활약한 이동환은 "미국, 일본에서도 많은 대회를 치러봤지만, 대회 전날 프로암 대신 주니어 선수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건 처음 봤다"면서 "아이들에게 큰 영감과 분발의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상엽은 "내가 주니어 시절에 이런 경험을 했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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