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공개행사여서인지 역대 최대 규모인 1만여 명이 행사장에 왔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념식인데도 입구의 검색대 말고는 시민을 불편하게 하는 경호가 눈에 띄지 않았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여야 정치인 등이 유족이나 시민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여권 인사들이 더 많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 지도부도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시민들과 함께 일반인 석에서 행사를 지켜봤다. 지역 상징성이 있는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YS 차남)와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DJ 삼남)도 나란히 행사장에 나왔다. 전체적으로 화합의 분위기가 넘치는 감동과 치유의 현장이었다.
이번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9년 만에 부활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2년 차였던 2009년부터 합창단이 부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제창이 됐다. 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다른 여야 정치인들과 참석자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를 마친 일부 정치인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게 정상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주요 정치권 인사 가운데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과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노래를 따라 하지 않았다. 정 권한대행은 "제창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책임자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미완 상태인 것을 청산 대상의 '적폐'로 지목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완전한 진상규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며, 국민이 함께 가꾸어야 할 민주주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5.18 진상규명은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살리는 데 필요한 것이며, 따라서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또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촛불광장에서 부활했고, 촛불은 국민주권 시대를 열었으며,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다"는 말도 했다. '촛불'의 힘으로 탄생했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현 정권이 5.18 진상규명의 역사적 책무를 갖고 있음을 거듭 강조한 것 같다.
더 주목할 부분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문 대통령의 역사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5.18을 규정했다. 정부가 3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5.18 진상규명에 나서는 명분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 없이는 과거의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가슴에 낸 대못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런 청산과 복원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진보 적통을 자처하는 현 정권으로선 아무리 험해도 돌아가기 어려운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정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이 언급한 '국민'도 잊으면 안 된다. 확 바뀐 5.18 기념식을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국민도 분명히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았어도 섬기겠다'고 약속한 그 국민이기도 하다. 쉽지 않을 일일 테지만 그런 부분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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