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 다한 3시간 연주에 객석 기립박수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 독주는 소박하고 조촐하게 시작하는 듯했다.
반주자 없는 넓은 무대 한가운데 검은 가죽의자와 작은 카페트 하나.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로 걸어나오는 정경화는 장식없는 연보라색 드레스에 낮은 굽의 샌들로 마치 맨발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3시간에 걸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6곡)의 연주가 시작되자 거대한 산맥을 타는 듯 장엄한 연주가 펼쳐졌다.
오르간의 웅장함이 정경화의 바이올린에 그대로 옮겨간 듯했다. 어떤 지점에서는 젊은 시절의 맹렬함과 날카로움이 되살아왔다.
2천여 명의 관객은 숨을 죽였다.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으로 구성된 이 곡은 기교는 물론 음악적 깊이를 갖춰야 소화할 수 있는 바이올린 연주곡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정경화가 20대 때 도전했다가 스스로 "준비가 안 됐다"며 물러섰던 곡, 그리고 70살을 바라보면서 다시 악보를 잡아 지난 5년을 통째로 '바친' 곡이다.
무대에서 그는 전신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듯 보였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제 나이에 이 연주를 하는 것은 체력에 더해 정신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는 무대에서도 잠시 의자에 걸터앉는 모습을 보였다.
바흐 무반주 곡이 요구하는 '체력전'에도 불구하고 정경화는 시종 여유 있는 모습으로 '바이올린의 여제'다운 면모를 가감 없이 보였다.
청중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한 뒤 곧바로 연주에 들어가는 보통 연주자들과 달리 정경화는 6개 층으로 이뤄진 카네기홀 관객석에 상하로, 좌우로 시선을 던지며 청중에게 길게 인사를 건넸다.
박수갈채에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표정을 아끼지 않으며 객석과 소통했다.
인터미션 후에는 관객이 완전히 착석할 때까지 무대에 서서 잠시 기다리기도 했다.
13세 때 뉴욕으로 유학 온 정경화는 이날 공연을 통해 모교인 줄리아드 음악원의 전설적 바이올린 지도자였던 스승 이반 갈라미언(1903∼1981)을 기렸다.
공연 안내책자에 스승과 함께 찍은 옛 사진들을 싣고 "엄격했지만 저에게는 좌절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 준 너그러운 스승이었다"라며 "교실 밖에서는 멘토였고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추억했다.
공연이 끝난 후 정경화는 "뉴욕이라 더 떨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홈(Home)이라 그런지 더 편안했다. 뉴욕의 긍정적 에너지와 가족과 같은 편안함과 따스함이 느껴졌다"면서 "나의 꿈을 이룬 무대였다"고 말했다.
정경화는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서 우승하면서 그해 5월 16일 카네기홀에 섰다. 그의 얼굴에는 꼭 50년 만에 '고지'에 오른 감개무량함이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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