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정상화 수단 vs 해외 유출 우려…팬택 "노코멘트"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최근 스마트폰 사업을 잠정 중단한 팬택이 그간 보유해온 특허를 처분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경영 위기 타개를 시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핵심 자산인 특허를 모두 매각할 경우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까지 마친 팬택은 사실상 빈껍데기 회사로 전락할 수 있으며, 일부 특허가 중국 업체 등에 넘어갈 수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1일 미국 특허청(USPTO) 등에 따르면 팬택은 작년 10월 31일 230건에 달하는 미국 특허를 골드피크이노베이션즈(골드피크)에 양도하는 데 합의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본사를 둔 골드피크는 팬택이 특허를 처분하기 직전인 작년 10월 18일 설립된 특허 전문회사다. 팬택의 특허 수익화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파트너로 추정된다.
골드피크는 지식재산의 거래와 라이선싱, 자산 유동화 등을 핵심 사업 목적으로 내세운 일종의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다.
골드피크는 팬택의 특허에 관한 모든 권리를 넘겨받았으므로, 직접 이 특허에 따른 로열티를 얻거나 특허를 침해한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다. 제3자에게 다시 특허를 넘길 수도 있다.
이 회사는 설립 초반 미국 특허 전문회사 SPH 아메리카를 이끈 박모 변호사와 백모 변리사를 각각 사내이사와 감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SPH 아메리카는 지난 200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가진 다수 특허의 독점적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다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유명한 특허 괴물이다.
팬택이 이런 골드피크에 특허를 대거 양도한 배경에는 극심하게 나빠진 자금 사정이 있다.
청산 위기를 극복하고 쏠리드[050890]에 인수된 팬택은 작년 한 해 517억원의 매출보다 많은 59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자본 잠식에 빠진 지 오래다.
팬택은 작년 6월 1년 7개월 만에 신작 스마트폰 '아임백'(IM-100)을 출시해 호평을 받았으나, 총 출하량이 13만2천여대에 그쳐 목표치 30만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대했던 베트남 현지 합작회사 설립마저 어려워지자 모회사 쏠리드는 지난 11일 팬택의 스마트폰 사업 잠정 중단을 선언하고, 직원 수를 50여명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특허 처분은 김모 이사 등 쏠리드 최고 경영진이 비용 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강행했으며, 문지욱 전 팬택 사장은 이견을 보인 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택은 조만간 특허를 추가로 처분할 가능성이 있다. 그 상대는 골드피크가 될 수도 있고, 팬택의 특허를 원하는 다른 국내외 특허 괴물이나 스마트 기기 제조사가 될 수도 있다.
팬택은 올해 3월 말 국내 특허 2천36건과 해외 특허 1천111건을 보유했고, 이미 감사보고서에서 '특허 수익화를 통한 경영 정상화'를 언급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팬택의 특허가 헐값에 외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부실한 특허로 해외 진출이 여의치 않은 신흥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특허를 온전히 지키는 일은 앞서 서울중앙지법이 2015년 10월 팬택의 회생 계획안을 인가할 때도 유독 신경 쓴 조건이었으나 이제 난망하게 됐다.
팬택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팬택은 세계 최초로 지문인식 센서를 스마트폰에 탑재한 저력 있는 회사"라며 "만일 주요 특허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면 사실상 '국부 유출'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팬택의 기업 회생 절차에 관여한 한 법조인은 "500명 고용 승계가 물거품이 됐고, 핵심 사업마저 불투명해져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쏠리드는 팬택을 살리기 위해 특허 처분이 불가피하고, 그나마 시간이 지나 특허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이를 매각하는 것이 오히려 회사에 이롭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팬택 관계자는 "특허 수익화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코멘트할 수 없다"면서도 "스마트폰 사업을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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