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정식 재판이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592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지 53일 만이고, 기소된 지 36일 만이다. 전두환ㆍ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법정에 서게 된 전직 대통령이다. 앞선 두 전직 대통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탄핵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첫 재판에는 박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순실 씨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피고인석에 함께 자리했다. 법원은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해 재판 개시 전 언론의 법정 촬영을 허용했으며, 모든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출석하는 현장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18개의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검찰은 법정에서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법정에 서는 모습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면서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대해 사법절차의 영역에서 심판이 이뤄져 법치주의가 확립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은 개인적 친분을 맺어온 최 씨에게 국가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도록 했고, 권력을 남용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했으며,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이는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뇌물수수의 동기가 없고, 최 씨와 공모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증거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또 블랙리스트와 청와대 기밀문건 유출 혐의와 관련해서도 직접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공모 사실 전반을 부인하면서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 씨 또한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검찰이 무리하게 엮은 것이라는 주장을 했으며, 신동빈 회장 측은 "공소사실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의문"이라며 무죄 항변을 했다.
법원은 이날 박 전 대통령 재판과 특검이 기소해 진행 중인 최 씨 재판을 병합해서 심리하겠다고 결정했다.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있고 예단을 줄 우려가 있다며 병합 심리에 반대한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소 주체가 일반 검사건 특별검사건 합쳐서 심리할 법률적 근거가 충분하고 과거 사례도 여러 차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무런 예단이나 편견 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하겠으며, 백지상태에서 충분히 심리하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미르ㆍK 스포츠재단 출연금 문제와 관련해 검찰과 특검이 각각 기소해 이중기소라는 변호인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중기소로 봐서 공소기각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첫 재판에는 많은 방청객이 몰려 3시간 동안 진행된 역사적인 재판을 지켜봤다.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방청객들은 "조금도 반성이 없는 모습에 화가 났다"고 했고, 지지자들은 "죄가 하나도 없다"고 반박했다. 법원 바깥에서도 지지자 15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고 한다. 재판부는 혐의 사실이 방대하고 1심 구속기한이 최대 6개월로 돼 있어 신속하게 심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판부가 백지상태에서 심리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제 차분하게 재판진행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재판부가 다짐한 대로 예단이나 편견 없이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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