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봉면 명물인 '새만금 바람길'→'먼짓길' 전락…외지인 발길 끊긴 지 오래
흙먼지, 인근 군산·김제 주민 생업마저 위협…주민들 "못 살겠다" 아우성
(군산·김제=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1초도 눈을 뜰 수가 없어요. 요즘 같이 맑은 날에는 흙먼지 때문에 밖에 빨래를 못 널고 동네를 잠시만 돌아다녀도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끔거려서 견딜 수가 없어요."
26일 전북 군산시 회현면 오봉마을에서 만난 이모(66)씨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새만금 농업용지 1-1공구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마을 앞 100여m 거리에서 진행 중인 새만금 매립 현장에서 날라오는 희뿌연 흙먼지 때문에 인터뷰 내내 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이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지만, 오봉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새만금 현장은 사막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래바람으로 뒤덮여 있었다.
대기는 흙먼지로 가득 차 불과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공사현장 인근에 1분도 채 서 있지 않았는데 먼지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 정도였다.
입고 간 검은색 옷은 이미 먼지가 들러붙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현장 취재 중에도 코와 입으로 먼지가 마구 들어와 침을 내뱉기에 바빴다.
이씨는 "집 안으로 들이치는 모래 때문에 잠시도 창문을 열어놓을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맑은 날에는 빨래는 물론 동네 오가는 것도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모래 먼지는 서풍을 타고 만경강을 건너 김제시 진봉면 쪽으로 퍼져 나갔다.
진봉면의 명물인 '새만금 바람길'은 이미 먼지투성이였다.
김제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은 '먼짓길'로 전락해 외지인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뿌연 평야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마을 주민 박모(61)씨는 "새만금 방조제 사업이 시작된 이후 김제에는 호흡기 환자가 부쩍 늘었다"며 "가만히 있어도 눈이 따끔거리고 목이 칼칼해 나도 살기 힘든데 누가 김제로 여행을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제 심포항에 자리 잡은 상가 업주들도 울상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찾아온 관광객마다 가게 안 창틀과 탁자에 날아든 먼지를 보곤 뒷걸음질 친다며 하소연한다.
횟집을 운영하는 서모(62·여)씨는 "위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횟집 탁자에 먼지가 쌓이고, 하루가 멀다고 창틀에 뿌연 먼지가 끼니 누가 식당에 들어오고 싶겠냐"며 "보다시피 한낮인데도 상가 앞에 개미 한 마리 없지 않냐"며 울분을 토했다.
옆 상가의 최모(58)씨도 "사람들이 여름철에 날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아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먼지까지 날아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김제시청, 전북도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민원을 넣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이처럼 새만금에서 발생한 먼지가 바람을 타고 내륙으로 퍼지면서 군산과 김제, 부안, 전주 등의 주민과 상가에 타격을 주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도 최근 전북이 미세먼지 농도 전국 1위를 기록한 주범으로 새만금 현장의 흙먼지를 지목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전북의 2015년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35㎍/㎥, 2016년에는 31㎍/㎥로 전국 1위에 올랐다.
환경운동연합은 새만금 농업용지와 산업단지 등 이미 뭍으로 드러난 육지에서 발생한 강력한 먼지가 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원인이라는 주장을 편다.
한 관계자는 "이상하게도 전국 화력발전소의 절반이 들어선 충남보다 전북의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다"며 "전북도와 환경부는 조속히 실태 조사에 나서 새만금 먼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주민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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