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부시 前 미국 대통령, 북핵보다 이란핵 더 중시"

입력 2017-05-26 11:11   수정 2017-05-26 11:41

한승주 "부시 前 미국 대통령, 북핵보다 이란핵 더 중시"

회고록서 노무현-부시 시절 한미 북핵조율 실패사 기술

"한미, 북핵 견해·접근법 너무 달라 공동보조 어려웠다"

"94년 북폭안 美국방장관 서랍에만…'韓, 북폭 저지설'은 과장"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미국과 한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너무나 상반된 견해와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같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양국의 회의는 협의라기보다는 강경책을 취할 것인지 온건책을 취할 것인지의 선택을 놓고 양측이 협상이나 논쟁하는 자리가 되기 일쑤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77) 전 외무부 장관은 최근 펴낸 회고록 '외교의 길'에서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2002년 가을부터 2005년 2월 북한 외무성의 핵보유 선언 때까지 북핵 저지를 위한 한미공조가 실패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서술했다.

'노무현-조지 W.부시' 조합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진보 성향 대통령(문재인)과 미국 공화당 정권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의 조합이 이뤄지면서 한미간의 원만한 대북 조율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수로 떠오른 만큼 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 전 장관은 "결과적으로 제2차 (북한) 핵위기가 시작된 2002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확보 의지만 키워주고 기회만 제공해준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과 관련, 저자는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보다는 이란핵 문제를 더 중시했다고 소개했다.

부시가 한국 대통령(노무현)을 만날 때마다 "대통령 각하, 미안하지만 우리(미국)로서는 북한보다 이란의 핵 무장이 더 심각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한 전 장관의 회고다.

이에 저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이 아직 북한보다 핵무기 개발의 진도는 늦지만 테러집단에 핵물질이나 무기를 이전할 가능성이 더 크고, 이스라엘에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이란이라는 나라가 중동의 화약고 한복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며 부시가 이라크 전쟁과 이란 핵문제에 몰두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정책적 적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판단 하에 핵무기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한 반면 미국은 이라크 평정에 매달리느라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압력을 가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집착이 한·미에 대해 느끼는 안보 불안감 때문이며, 그 불안감이 해소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견해를 가졌다고 한 전 장관은 전했다.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가 2003년 방한했을 때 이 같은 견해를 피력한 노 전 대통령에게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라며 완곡하게 이견을 드러냈다는 일화도 회고록에 소개됐다.

한 전 장관은 자신이 주미대사로 재직한 22개월간 "대미외교는 청와대가 사사건건 간섭하는 기형적인 상황이었다"며 "한미관계 같은 중요한 외교 사안에서 외교부가 종종 소외되는 것은 나로서는 생소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 무렵 미국의 경우도 콜린 파월 당시 장관(2001∼2005년)이 이끈 국무부와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의 사이에서 많은 견해차가 있었고,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에도 정책 갈등이 노출됐다고 한 전 장관은 회고했다.

한편 한 전 장관은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검토설이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기술했다.

윌리엄 페리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당시 상황에 언급,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는 긴급사태 대책은) 내 책상 서랍에는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책상 위에 꺼내놓은 것도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한 전 장관 회고록에 소개됐다. 회고록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한국이 막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인 한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1994년 외무장관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2005년 주미대사를 각각 역임하며 제1,2차 북핵 위기 당시 정부의 외교적 대응에 깊이 관여했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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