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美브레진스키, '김대중 구명' 등 한국 민주화에 기여

입력 2017-05-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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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美브레진스키, '김대중 구명' 등 한국 민주화에 기여

북핵 위험성 일찍이 경고하며 '대북 강경론' 펴기도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26일(현지시간) 향년 89세로 별세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에도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가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의 외교 브레인을 맡았던 1970년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부독재와 그에 맞선 민주화운동, 신군부의 쿠데타 등이 일어난 격동의 시기였다. 미국의 외교 브레인으로서 그의 판단과 결정은 당시 미국의 대 한국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미국 기밀문서는 이 격동의 시대에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이 한국의 민주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자료는 1980년 '5ㆍ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형 집행 여부를 놓고 신군부와 미국 백악관 사이에 긴박한 협상이 벌어졌음을 보여준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5ㆍ17조치를 단행하면서 DJ와 문익환 목사 등 26명을 구속, 내란예비음모 등 혐의로 군법회의에 기소했다. DJ는 같은 해 9월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남편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긴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DJ의 구명을 위해 백악관 수뇌부의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

이에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1980년 10월 카터 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백악관)의 구명문제에 대한 사정을 살피려 장교를 보냈다. 그에게 '김'(DJ)이 사형을 당하면 미국 내 수많은 단체가 항의시위를 분출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북한에만 혜택이 돌아갈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고 썼다.

신군부는 DJ의 목숨을 담보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거래'를 위한 밀사를 보냈고, 백악관은 '인권'을 구실로 DJ의 감형을 요구하는 막후접촉을 벌였던 것이다.

결국, 다음 해 초 출범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취임 다음 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미를 발표했고, 사흘 뒤 전 대통령은 DJ의 감형을 선언했다. 브레진스키 등 DJ의 구명을 위해 애썼던 카터 전 행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서 물러난 후에도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을 만나거나, 활발한 저작, 언론 기고 등으로 한국의 외교 전선에 영향을 미쳤다.

2009년 6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자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80대의 고령임에도 백악관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조언했다.

2015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미했을 때에는 이틀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을 만나 환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동북아 정세를 언급하며,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의 저서에 있는 '정치적 휴화산'이라는 표현을 인용하기도 했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저서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한국의 외교적 위험을 경고하기도 하고, 일본에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할 것을 충고하기도 했다.

특히 대북 문제에서는 일찍이 1990년대부터 북한의 핵 개발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강력한 제재를 미 행정부에 요구했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2003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 이란, 이라크 가운데 북한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하면서 이라크 전쟁을 우선시하는 부시 행정부를 질타했다.

2002년 CNN과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혹과 100만 명 규모의 군대, 그리고 수백 기의 미사일 보유를 지적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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