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에너지기업 줄파산 때 은행들 '눈덩이 충당금'과 다른 모습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최근 미국 소매업체들의 파산이 크게 늘어났으나 은행들의 피해는 에너지 기업들의 무더기 파산에 따른 피해만큼 크지는 않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쇼핑 패턴의 변화와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기업의 득세로 오프라인 소매업체들이 올해 들어 줄줄이 파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23일까지 집계된 소매업체들의 파산 사례는 올해 들어 모두 21건으로, 여기에는 페이리스 슈소스, BCBG 맥스 아즈리아 그룹, 리미티드 스토어스 등이 포함됐다.
많은 미국 은행들이 에너지 기업보다 소매업체에 더 많은 자금을 대출한 상태로 특히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웰스 파고 등은 소매업체를 상대로 한 대출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BOA의 소매업종 대출액은 작년 말 현재 416억 달러로, 에너지 업종 대출액 197억 달러를 압도하고 있다.
BOA나 웰스파고 등은 이미 파산한 21개 소매업체 가운데 9개 업체에 대출 채권을 갖고 있고 아직 파산 보호를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경영난에 빠진 시어스, 본톤 스토어스 등에도 자금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소매업체들의 연쇄 파산과 관련해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지난달 컨퍼런스 콜에서 대형 은행들이 안고 있는 리스크는 크지 않다며 느긋한 자세를 보였다.
이처럼 은행들이 여유를 보이는 것은 파산한 소매업체들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했기 때문이다. 파산한 소매업체들이 다양한 형태의 부채를 안고 있지만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상품 재고와 미수금 등은 쉽게 회수할 수 있는 자산이다.
에버코어 ISI의 은행업 에널리스트인 글렌 쇼어는 연쇄 파산이 소매업체에는 나쁜 소식이지만 은행들에는 그다지 나쁜 소식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은행들의 대손 충당금을 보더라도 소매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을 아울러 지적했다.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기업들의 파산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손충당금에서 차지하는 해당 업종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지난해와는 사뭇 대조적인 것이다.
이는 두 업종의 여건이 크게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에너지업종의 경우, 유가 하락의 충격이 업계 전반에 파급돼지만 소매업의 경우는 오프라인 업체들이 곤란에 처하더라도 온라인 업체 등의 선전으로 상쇄할 수 있다.
은행들이 잡고 있는 담보에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소매업체들의 상품 재고나 미수금은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의 가격처럼 변동성이 크지 않아 상대적으로 우량하다는 것이다.
WSJ가 파산한 21개 소매업체들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와 S&P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5개 소매업체들이 은행들로부터 자산 담보부 대출을 받았지만 이미 상환됐거나 무난히 상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얼마전 파산한 루21의 경우가 은행들이 잡고 있는 담보의 안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루21 측은 BOA에 7천20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지만 향후 수개월에 걸쳐 1천200개 점포 가운데 400개를 청산하고 그 수익금을 통해 상환한다는 방침이다.
jsm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