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베토벤·리스트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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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교수님'이란 호칭을 듣는 게 여전히 어색할 때가 있어요.(웃음) 아직도 학생 같은 기분이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삶을 살면서 연주를 계속 해나가기도 쉽지 않아요. '난 왜 이렇게 편하지 못한 삶을 살까?' 싶을 때도 있지만, 이 질문을 계속 저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게 있어요."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난 중견 피아니스트 백혜선(52)은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자녀를 둔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음악가로서 '정점'에 서 있던 순간 그 자리를 내려놓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경험이 있다. "엄마, 연주자, 교수 역할을 다 하기엔 벅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초반 음악인생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1위 없는 3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리즈 콩쿠르 등 권위 있는 대회에서 잇달아 입상하며 일찍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적 클래식 레이블 EMI와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음반 3개를 발매하는 계약도 맺었다.
차이콥스키 입상 소식을 전한 1994년에는 29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교수로까지 임용돼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연주하면서 두려움이 컸습니다. 이렇게 쉽게 올라가도 되는지, 이렇게 올라가서 꼭짓점을 치면 내려가는 길만 남은 건 아닌지, 내가 너무 과하게 포장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어요. 제가 숙성되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걸 일일이 외부에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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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2005년 서울대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미국행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뉴욕 생활을 통해 숨 쉴 여유를 찾았다. 두 자녀는 '엄마'의 손길 아래 현재 13세와 15세의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과거와 같은 번쩍이는 스포트라이트는 아니지만, 꾸준히 세계 무대에서도 커리어도 쌓고 있다.
매년 여름 뉴욕 한복판에서 열리는 세계 피아니스트들의 축제인 IKIF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초청돼 독주회를 열었다.
2013년 9월부터는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초의 동양인 교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음악가 중에는 종교인처럼 연주에만 몰두하는 분도 계시죠.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도 낳지 않고 하나의 화두에만 집중을 경우를 봐요. 그러나 저는 이리저리로 날아 다녔어요.(웃음) 저 역시 '이렇게 보통의 삶을 사는 내가 연주하는 사람 맞아?'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경험하고 고민했고, 그로부터 따뜻함과 소통의 길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는 10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무대를 연다. 국내에서 작은 무대들에는 계속 서 왔지만, 이름을 걸고 대형 공연장에서 여는 독주회는 4년 만이다.
1부에서는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을 선보인다. 2018~2019 시즌 진행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앞서 이 곡을 먼저 선보이기로 했다.
33개의 작은 소품으로 이뤄진 이 곡은 베토벤 특유의 유머와 비웃음, 고집, 인간미, 너그러움과 자비 등이 표현돼 베토벤의 음악 세계를 총망라한다는 평가를 듣는 곡이다.
2부에는 리스트의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회상' 등을 연주한다. 리스트의 곡 중에서도 테크닉적으로 최고난도에 속하는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는 "1부에서는 베토벤의 표현 기법과 음악적 세계에서 정점을 이룬 곡을 선보인다면, 2부에서는 피아니스트의 기교적 측면에서 정점을 이룬 곡을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에 도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음악인으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기 위한 선택"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저는 사실 전곡 연주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곡을 하면 되지 굳이 전곡을 연주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가 많았거든요. 그러나 더 늦기 전에 한번 전곡을 정리한다면 베토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 같고, 음악인으로도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쉬운 것을 탈피하는 것, 무섭고 두렵지만 해보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 같아요."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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