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다시 제 위상을 찾고 있다. '유럽의 여제'라는 별칭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지난 2015년 여름 이래 난민 위기를 겪으며 꺼졌던 지지율이 급속도록 회복되는 모습이다.
가장 최근인 27일(현지시간) 나온 전문기관 엠니트 여론조사에서 그가 당수로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 연합은 38% 지지율을 찍었다. 반면 라이벌 정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25%에 그쳤다.
다른 기관 알렌스바흐가 26일 내놓은 조사로는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 지지율이 각기 37%, 26%로 집계됐다.
사민당은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이 당수 겸 총리후보로 낙점되고 나서 2월부터 30%대 지지를 기록하며 한때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초라한 당세를 극복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일었다.
독일 정치권과 미디어는 이를 두고 '슐츠 효과'라고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9월 총선을 앞두고 최근 치른 세 차례 주(州)의회선거에서 사민당은 잇따라 패배하고 지지율도 속절 없이 꺼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이른바 대서양 동맹이 삐걱거리고 국제정세가 불안정해 지는 것이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예고됨에 따라 EU 세력이 약화하고 원심력도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지는 것은 사민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국제환경은 메르켈뿐 아니라 독일 정치권 전반에 닥친 공통의 난관이지만, 바로 그런 위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리더가 누구냐 하는 질문을 독일 유권자들은 하기 시작했고, 그 해답은 대개 '메르켈'로 나오기 때문이다.
2005년 총리직을 꿰찬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재정위기를 포함하는 유럽의 경제위기를 지나서 난민 위기를 거쳐 '오늘의 잘나가는 독일'을 13년째 보전한 백전노장의 정치지도자라는 평가가 따른다.
이번 엠니트 조사에서 총리를 직접 뽑을 경우 메르켈이 52% 지지를 받고 슐츠는 29% 지지를 얻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온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앞서 슐츠 효과가 거론될 때는 둘의 지지율이 붙는 경우도 있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뷔르젤렌이라는 '변방' 도시에서 성장하고서 유럽 정치무대를 활보한 슐츠이지만, 메르켈의 지명도와 정치경륜에 견준다면 미약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독일 유권자들의 시각이다.
슐츠가 다음 총리를 맡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다르게 잘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물었을 때 명쾌한 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차원에서 큰 흠결이 없고 '안정감 있고 경험 많은' 메르켈을 찾게 된다는 논리다.
사민당은 지지율이 꺾이고 슐츠의 총리대망론도 난망한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자 당 안팎에서 잡음도 잇따르고 있다.
직전 2013년 총선 때 사민당 총리후보였던 페어 슈타인브뤼크 전 의원이 100% 지지로 슐츠가 사민당 당수에 선출된 것을 두고 과거 동독 공산정부 시절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에 빗대어 비판하고 슐츠가 총선 모토로 내세운 '더 많은 정의(공정)'를 아울러 깎아내린 것이다.
슈타인브뤼크 전 의원은 "공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래비전들과 진보를 덧붙여 설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지금의 사민당은 현실감을 잃었다"라고 덧붙였다.
2013년 총선 때 메르켈의 기민-기사당 연합에 15.8%포인트 격차로 대패한 선거를 이끈 슈타인브뤼크의 이런 지적에 랄프 슈테그너 부당수 등 사민당 몇몇 핵심 인사들은 '원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고 있다'라거나 '못됐다'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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