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대 뇌물, 전·현직 공무원만 8명 구속…검찰 "검은 유착 대물림"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시 고위 공직자 출신과 현직 공무원들이 하천교량 관급공사를 하면서 업체와 깊숙이 결탁,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검찰 조사로 드러나 파장이 크다.
두 달간 진행된 수사로 전·현직 공무원 8명이 특가법상 뇌물수수나 알선 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업자 1명은 구속기소 됐다.
1년간 오간 뇌물 액수는 7억원이 넘는다.
대부분 특정 학연으로 얽힌 이들은 토목 관련 직무를 수행하며 비리를 저질러 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업체에 취업한 퇴직 공무원들은 현직과 연결하는 다리가 돼 이른바 '관피아'를 형성했다.
검찰 수사는 하천교량 비리만이 아니라 하천 토목공사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 부실시공 부른 검은 유착 드러나
검은 유착관계는 업체의 부실공사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3년 10월 제주시가 발주, 공사에 들어간 한천 한북교 교량 확장공사의 교량 상판 중앙부가 심하게 휘어 볼록 솟아올랐다.
상판의 뼈대가 된 27개 구조물 중 중앙부가 적은 곳은 39㎜, 많은 곳은 169㎜까지 휘어졌다. 이는 설계 당시 허용된 휜 정도인 101∼141㎜ 기준을 모두 크게 벗어난 수치다.
한북교는 제주시 연동·오라동 등 신제주권과 아라동·오등동을 동·서로 연결하는 오라2동 아연로에 있다.
한북교는 애초 길이 75m, 폭 10m의 왕복 2차선이었으나 교통량 급증에 따른 병목 현상 해소를 위해 길이 77m, 폭 25m의 왕복 4차선으로 확장, 시공하려고 했다.
이런 부실공사로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장기간 공사가 진행돼 통해에 불편을 주고 있다.
이 사업을 한 건설업체는 특허를 받은 공법인 '합성형 라멘거더'라는 재료로 교량 상판을 만들겠다고 소개, 공사를 발주 받았다.
2015년 5월 14일 교량이 상부에 콘크리트를 타설한 후에도 휜 정도가 기준보다 심하자 제주시는 원인 규명과 구조안전 등에 대해 점검하고 필요하면 재시공하도록 했다.
제주도 건설기술심의위원 등 자문단도 교량 시설의 장기적인 내구성·사용성과 시민 안전을 고려, 합성형 라멘거더를 철거한 후 재시공하도록 통보했다.
그러나 감독공무원들과 업자들로 구성된 해당 사업관리단은 단순한 하자일 뿐이며 구조적으로 안전하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하고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다.
감독공무원은 업체가 하자가 발생할 수 있는 품질을 사용하는 데도 품질관리 관련 자료를 요구하거나 휜 정도를 직접 측정하는 등 확인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합성형 라멘거더에 대한 품질관리 적정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적정하게 제작됐다고도 인정을 해줬다.
이 공사는 사업비가 55억4천만원 들어가는데 계약심의위원회의 심의 없이 공사 진행을 결정했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도급계약인데도 전문기관을 따로 지정, 감독하지도 않았다.
관련 공무원들이 뒤를 봐주지 않았더라면 업체가 받을 수 없는 특혜였다.
문제는 한천 한북교만이 아니다.
2014년 6월 공사에 들어간 제주시 화북천 와호교 교량 재가설 공사에서도 부실시공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공사는 제주시 도련동과 화북동 일원의 상습 수해 피해예방 시설을 정비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이 공사에서는 상부와 난간 기초에 콘크리트를 타설한 후에 교량 중앙부가 93.9∼111.4㎜ 처져 시공허용 오차범위(5.9㎜±20㎜)를 크게 벗어났다.
각종 문제가 터지자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감사에 착수했으나 2016년 8월 한북교 담당 7급 공무원 2명에 대해서만 경징계를 요구하는 데 그쳤다.
◇ 업체 봐주고 뇌물, 퇴직 후엔 브로커 활동
하천교량 공사에 숨었던 비리가 드러난 것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다.
제주지검은 지난 2월 특수사건을 전담하는 형사3부를 신설, 지역사회 관행으로 굳어진 토착 비리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지방하천 정비와 부실시공에 대한 자료를 검토해 3월부터 교량 확장 등의 공사에 참여한 건설업체와 납품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검찰은 한북교 교량 확장공사와 관련,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전·현직 공무원 7명을 구속했다.
구속자는 범행 당시 기준으로 전직의 경우 국장급인 4급 2명, 과장급 5급 1명, 과거 북제주군 퇴직자 1명 등 4명이다. 현직은 과장급 1명, 6급 2명 등 3명이다.
이들에게 돈을 주고 하천교량 공사에 참여한 건설업체 운영자 강모(62)씨도 뇌물공여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업자와 이들 공무원 간 오간 뇌물 액수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총 7억원이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직 공무원들은 퇴직 후 해당 업체에 취업해 현직 공무원들과 유착관계 속에서 뇌물을 주고받았다. 한 현직 공무원은 업자에게 빌라를 헐값에 받아 고가에 되팔기도 했다.
전직 공무원 중에는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찾아가 비위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 1억원을 뜯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화북천 와호교 교량 재가설 공사에서는 제주시 국장급인 4급 공무원 출신으로 모 업체 대표인 김모(64)씨가 특가법상 알선 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검찰은 이들 전·현직 공무원이 평소 업자에게 떡값과 선물 등을 받으며 지속해서 유착관계를 형성, 사업 발주 시 편법으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돈을 챙겨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하위직부터 고위직까지 업자와 깊은 유착관계를 형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갈취와 적극적인 뇌물요구도 확인됐다"며 "업체 로비에 따라 사실상의 수의계약이 가능한 구조가 될 수 있으므로 보조금 지급과 관리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구속된 전·현직 공무원들이 받아 챙긴 총 7억1천여만원을 국가에 환수하려고 아파트와 예금계좌 등을 몰수·추징보전 조치하기로 했다.
◇ 제주도 "잇단 비리 사과"…검찰 칼끝 어디까지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일 '소통과 공감의 날' 회의에서 "최근 공직자의 청렴도와 관련된 부분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다"며 "상당 부분은 전임 도정에서 이미 벌어진 일들도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과거 일이라고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이번에 뿌리를 뽑는다는 각오로 확실히 청소하고 털고 갈 것"이라며 "관련 감사와 내부 감찰에 다시 한 번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천 비리와는 별개의 생활체육회 지원금 횡령 사건으로 공무원 1명과 전직 제주시장 등 간부 5명이 비위 방조 혐의로 입건되기도 한 제주시는 공개 사과를 했다.
고경실 제주시장은 지난 17일 사과문을 내 "혁신적 청렴 정책의 철저한 이행으로 공직사회에 더는 부정부패와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행정의 갑질 행위, 시민 생활불편을 고려하지 않은 공사 추진 등 행정 편의주의를 타파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등 특단의 조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검찰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7년간 제주에서 이뤄진 하천정비 사업과 교량 건설 사업과 관련한 결재서류와 사업규모, 교량 시공 문서, 계약 서류 등을 확보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보조금을 목적 외로 사용하다 적발된 사업이나 부실시공 논란을 빚은 곳에 대해 일일이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제주시의 경우 한천 한북교 교량 확장공사와 화북천 와호교 교량 재가설 등 2건의 공사 외에도 병문천 수해상습지 정비공사 등 7개 지방하천 정비사업에서 목적 외 사업으로 집행된 사업비가 14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귀포시는 남원읍 서중천 수해상습지 개선공사 등 총 8건의 집행내용에 목적 외 내역을 임의로 작성, 2014년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이로 인해 목적 외 사용금액 19억1천여만 등의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서귀포시는 12곳의 지방하천 정비사업에서도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 대상이 아닌 목적 외 사업에 국고보조금 114억원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적보고서 세부집행내용을 사실과 달리 작성, 2012·2013년도 국고보조금액 327억8천만원 중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업에 72억4천만원을 확정받았다.
또 2014년도 국고보조금액 84억7천만원 중 목적 외 사업에 사용된 41억6천만원에 대한 세부집행내용도 국고보조 대상사업에 사용한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작성, 국토부에 실적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의 칼끝 향배에 따라 양 행정시의 지방하천 공사 발주 과정 및 예산 집행에 문제가 드러나 더 큰 파문이 일 가능성도 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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