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습격하다 분노한 주민에 죽임 당해…사체 심하게 훼손
서식지 파괴로 터전서 내몰린 야생동물, 곳곳서 인간과 충돌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수마트라 호랑이가 인도네시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의 집단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30일 일간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주(州) 천연자원보호국(BKSDA)은 지난 26일 라부한 바투 우타라 리젠시(군·郡)의 한 마을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두 살짜리 수컷 호랑이의 사체를 발견했다.
마을 인근에 묻혀 있던 호랑이의 사체는 얼굴 부위가 흉기로 난자돼 있었으며, 안구와 수염, 꼬리, 성기 등 장기 일부가 뜯겨나간 상태였다.
해당 지역 경찰 당국자는 "최근 호랑이가 가축을 습격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호랑이를 잡아 죽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에선 호랑이 사냥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작년 3월에도 북수마트라주의 다른 지역에서 주민들이 호랑이를 죽이고 고기를 나눠먹은 사례가 적발되는 등 유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발 확대로 서식지에서 내몰린 호랑이들이 민가로 내려와 먹이를 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인도네시아에선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실제 1960년대 1억명 내외였던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017년 현재 2억6천300만명으로 50년만에 2.5배 이상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활동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고무와 팜오일 농장 개간을 위한 벌목으로 열대우림이 훼손되면서 야생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현지 환경운동가인 코이루딘 문테는 "이번 사건도 인근 숲에서 불법벌목이 이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호랑이 외에 오랑우탄과 수마트라 코끼리 등 다른 멸종위기 동물들도 농작물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공격을 받는 사례가 잦다"고 덧붙였다.
허버트 아리토낭 북수마트라주 천연자원보호국(BKSDA) 국장은 "멸종위기 동물을 죽이는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다"면서 "이번 사건은 명백한 범죄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현존하는 호랑이 중 가장 덩치가 작은 호랑이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심각한 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이다.
심각한 위기종은 '야생 상태 절멸'(Extinct in the Wild)의 바로 앞 단계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만 400여마리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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