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거주 추정 60대, 강릉 경찰에 사연 담긴 손편지와 60만원 보내
(강릉=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35년 전인 1982년 강릉에서 춘천까지 택시를 타고 갔으나 돈이 없어 내지 못 한 택시비 6만원에 오랫동안 양심의 가책을 짊어지고 살아온 한 남성이 35년 만에 10배인 60만원을 기부했다.
1일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강릉경찰서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보내는 사람에 '영월'만 쓰여 있어 영월에서 보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봉투 안에는 한 통의 편지와 함께 5만원권 12장이 들어있었다.
편지는 정갈한 글씨체로 돈을 보낸 사연이 쓰여 있었는데 그 사연은 이랬다.
글쓴이는 "35년 전 나는 학생이었다. 지금은 60이 되었고 그때는 아르바이트하며 춘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며 운을 뗐다.
그는 갑자기 한 친구가 찾아와 강릉을 놀러 가자는 제안을 해 다음 날 친구 둘, 모르는 아저씨 둘과 함께 총 다섯이서 강릉에서 밥도 먹고, 구경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저씨들이 비용을 모두 계산했지만 해가 저물면서 돈도 없고 마음은 불안해지고 자꾸 조바심이 났다.
아저씨 한 명이 술에 취해 일어서지 못하자 이들은 아저씨들을 내버려둔 채 도망쳐 나왔다.
하지만 그제야 돈도 없고 낯선 곳에서 깜깜한 밤을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느껴졌다.
글쓴이가 파출소에 가자고 했으나 한 친구가 "내가 알아서 할게" 하더니 택시를 세웠다.
친구는 "춘천에 가면 돈이 있다"고 말했지만, 춘천에 도착하자 돈을 빌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이들은 결국 다음에 택시비를 보내드리기로 하고 택시를 돌려보냈다.
알아서 하겠다더니 사기를 친 친구 탓에 졸지에 6만원을 떼어먹은 공범이 된 글쓴이는 가슴에 미안하고 죄송한 맘을 묻고 세월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사기를 친 친구와는 그 이후로 보지 않았다.
글쓴이가 아는 것이라곤 당시 택시 기사가 중년남성으로 '최 씨' 성을 가졌다는 것뿐이었다.
글쓴이는 "문득문득 6만원을 벌려고 밤새 강릉에서 춘천까지 오셨던 최 씨라는 기사님을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다. 아니 지워지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는 죽기 전에 짐을 덜고 싶고, 기사님이 어찌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지만 이제 찾을 수도 없어 좋은 일에 써주기를 부탁한다고 끝맺었다
경찰은 보낸 사람을 수소문했으나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보내온 돈은 최근 폭행을 당해 봉합 수술을 하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나 가정형편이 여의치 못한 범죄피해자 한모(71·택시 기사)에게 긴급 치료비로 지원했다.
경찰 관계자는 "비록 발신자는 밝혀내지 못했으나 마침 가정형편이 어려운 범죄피해자에게 전달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35년 전 택시 기사도 글쓴이의 사연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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