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암행어사' 박문수도 중국 어선 약탈엔 두 손 들었다

입력 2017-06-02 09:33  

[숨은 역사 2cm] '암행어사' 박문수도 중국 어선 약탈엔 두 손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오징어 가격이 1년 새 70% 넘게 치솟아 서민 가계에 더 큰 부담이 생겼다.

가격 폭등은 해수 온도가 높아져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든 데다 중국 어선이 동해에서 싹쓸이 조업을 한 때문이다.

중국 어선은 7~9월 북한에서 남하하는 오징어떼를 따라 내려오면서 마구잡이로 담아간다.






2004년 140여 척이던 동해 상 오징어잡이 중국 배는 매년 늘어나 2014년에는 1천904척으로 파악됐다.

중국 어선이 몰려들면서 강원도 어민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오징어 어획량이 8년 만에 반 토막 난 탓이다.

강원도 어민들은 연근해로 나갔다가 종종 허탕 치는 바람에 선원 급여나 기름값을 감당하는데도 허덕인다.

중국 어선이 침범 영역을 서해에서 동해로 확장했는데도 감시와 단속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국인들이 한반도 어장을 조직적으로 약탈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부터다.

우리 해역에서 노략질하던 왜구들이 임진왜란에 동원돼 사라지자 중국 어선이 그 공백을 메운 것이다.






서해를 무법천지로 만든 청나라 어선을 황당선이라고 불렀다.

청나라 선박이 눈에 설어서 황당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황당선은 떼 지어 다니며 물고기만 잡아간 게 아니다.

선원들은 해안 주택가로 침투해 가축과 식량 등을 강탈했다.

이들은 어족자원을 훔친 해적이자 민간인 재산을 빼앗은 해상강도다.

영조실록에는 그 당시 실태가 적혀 있다.

바닷길을 잘 아는 중국인들이 해삼을 채취하려고 늦여름에 무리 지어 출몰했는데 나중에는 배가 수백 척으로 늘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선원 500~600명이 백령도를 에워쌌다는 내용도 있다.

황당선이 조선의 해양 주권을 짓밟고 어민 생계를 위협했는데도 조선의 대응은 황당했다.

중앙정부는 뒷짐만 졌고, 해군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나포하거나 압송하지 않고 총포를 발사해 내쫓는 데 그쳤다.

압송했다가 추방하려면 적잖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황당선에 다가가 돈과 식량을 줘 돌려보내고, 단속과 처벌은 중국에 부탁하기도 했다.

조선이 청나라에 조공하는 것도 모자라 해양 주권까지 포기한 것이다.

청나라는 처벌 요청을 받으면 단속하는 시늉만 한 탓에 불법 어업은 반복됐다.

조선 군함은 단속에 무용지물이었다. 중국 어선을 가끔 추격하지만, 워낙 느려서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박문수(1691~1756년)는 이런 현실에 분통을 터트린다.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박문수다.

약자를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억울한 사람을 구해준다고 알려진 암행어사의 대명사다.






실제로는 박문수가 왕명을 받아 지방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처벌하는 암행어사를 맡은 적은 없다.

다만, 병조·호조판서, 우참찬 등 요직을 거치며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은 강직한 인물이었다.

박문수는 왕명에 맞서다가 낙향하거나 파직당하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과인이 믿는 것은 하늘뿐이다"라는 영조의 말을 듣고 "군주가 하늘만 거론할 게 아니라 백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라고 응수한 일화는 유명하다.

박문수는 무능하거나 부패한 지방 관리를 엄벌하고 흉년 등으로 고통받는 백성에게는 긴급 생계지원을 하는 업적도 남겼다.

박문수가 빈민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친 영남에서는 그를 신격화했고 함경도 등에는 송덕비를 세웠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암행어사 박문수 신화가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문수는 조선 시대 위인 가운데 가장 많은 설화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등장하는 설화는 무려 97건이나 된다. 그다음으로 이항복과 이이가 20~30건이다.

박문수는 병조판서로 일하던 1738년 중국 어선의 해상 약탈이 심각하다고 보고 중앙정부 차원의 소탕작전을 제안한다.

6년 뒤에는 훨씬 구체적인 방안을 만든다.

1744년 황해도 해군 사령관(수군절도사)으로서 목격한 어민 피해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박문수의 해법은 쾌속선을 건조해 중국 선박을 바다에서 나포한다는 것이었다.

쾌속선 도입에는 400냥이 필요했으나 영조는 지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것도 모자라 핀잔까지 준다.

이순신은 왜적을 맞아 혼자 힘으로 이겼는데 해군 사령관으로서 한낱 민간 어선에 밀리느냐며 쾌속선 예산은 알아서 조달하라고 질책한 것이다.

박문수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는다.

1개월 뒤 다시 똑같은 상소를 한다.

영조가 이번에도 짜증 내면서 퇴짜를 놓은 탓에 불법어업 소탕 계획은 결국 무산되고 만다.

그 피해는 황해도 어민과 연안 주민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해적선을 방불케 하는 어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우리 정부가 중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 탓에 중국인의 해상 범죄는 수백 년 간 활개치게 된다.

어장 약탈 수법은 최근 훨씬 잔인하고 과감해졌다.

갑판에 쇠꼬챙이를 박아 해경의 접근을 막는가 하면 단속을 당하면 도끼와 쇠파이프 등을 휘두른다.

2008년에는 검문하던 우리 해경이 둔기에 맞아 숨지는 사태도 있었다.

한국 바다는 멋대로 짓밟아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쌓인 탓에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

해적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하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해군을 본받을 만하다.

영해에서 불법으로 조업하는 외국 어선이 발견되면 폭파해버린다. 강대국 중국 어선이라고 해서 눈치보는 일이 전혀 없다.

어선을 나포해 선원들을 내리게 한 다음 연료를 빼내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수중에서 터트린다

이런 조치는 과잉대응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불법 어업을 줄이는 데는 획기적인 효과를 거뒀다.






우리도 2016년부터 단속에 불응하는 중국 어선에 필요하면 벌컨포나 함포 등 공용화기를 발사하기로 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훌륭한 결정이다.

손으로 눌러 들어가지 않는 못에는 망치가 적격이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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