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미국의 선도자 역할 이어받을 태세
트럼프 정부와 차별화…저탄소 산업 투자·국제 기후협정에 열성
(서울·홍콩·오클랜드=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최현석 특파원 고한성 통신원 =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깨자 중국이 이를 지킨다며 선도적 위상을 파고들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과 함께 G2로도 불리는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출범 이후 기후변화 대응 외에도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하며 패권경쟁 행보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위선이라고 타박을 받은 자유무역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중국이 실제로 선도적 역할을 할 능력이 있을지는 별개 논쟁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와 관련, 2일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때 기후변화의 악동이었던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으로 국제사회 리더로 도약할 태세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오염 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2013년 기준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1천만kt(킬로톤)으로 2위 배출국인 미국의 2배였다.
중국은 1998년 이전까지만해도 기후변화 전문 연구원이나 온실가스 감시와 통제를 위한 정부 부처 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해 유엔 기후변화 정부 간 패널(IPCC) 총회가 중국을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으로 분류하자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1990년 기후변화 문제를 위한 정부 조직과 기후변화의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연구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중국은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서명했으며 파리협정 이전 기후변화협정이던 교토의정서에도 1998년 서명 후 2002년 비준했다.
특히 중국은 최근들어 저탄소 산업에 돈을 쏟아붓고 국제 기후협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까지 재생 에너지 분야에 3천610억 달러(약 405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이 지난해 재생 에너지에 투자한 금액은 880억 달러(약 99조 원)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회의에서 세계 첫 종합적 기후 합의에 대한 협상을 지원한 데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협정을 옹호하면서 국제사회 협력을 촉구했다.
협정 실천에도 다른 어떤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2020년에 탄소 배출량을 2005년보다 40∼45% 줄인다는 계획이며, 이는 중국이 실현 가능한 목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중국은 이같이 '기후변화 대응 리더'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제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취임한 이후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파리협정을 비롯한 갖은 기후변화 대응에서 발을 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후변화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가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파리협정 탈퇴 선언에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구 온난화 방지 관련 행정명령을 무력화하고 환경 예산을 삭감했다.
SCMP는 미국이 파리협정을 탈퇴하면 국제사회 리더로서 미국의 지위가 약해지고, 대신 중국이 그 공백을 메워 급부상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화권 매체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중국의 급부상을 관측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경보호청(EPA) 청장을 지낸 지나 매카시는 지난달 31일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중국이 에너지 미래를 지배하고, 미국은 지도력을 잃고 일자리와 영향력도 중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이 이미 재생 에너지에 상당한 투자를 하면서 석탄 화력 발전을 축소하는 점을 강조하며 5년 후 중국이 풍력 에너지 분야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로이터통신 칼럼니스트 클라이드 러셀도 2일 자 칼럼에서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시진핑 주석이 쓴웃음을 짓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세계 리더십이 이제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가 동맹국들의 분노를 일으켜 유럽이 미국보다 중국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과 유럽연합(EU)은 미국 탈퇴와 상관없이 파리협정을 이행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자는 내용의 선언문에 합의해 2일 중국-EU 정상회담에서 발표한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보도했다.
SCMP는 중국이 미국처럼 기후변화 정책에 대한 일부 종교 단체나 에너지 생산업체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는 점에도 주목했다.
캐나다 퀸즈 대학의 제임스 밀러 중국학 교수는 "중국은 깨끗한 공기가 부족하고 토양과 물이 오염돼 경제 발전이 환경에 미친 영향을 가장 많이 체감하는 곳"이라며 "많은 이들에게 환경이 추상적인 국제사회 현안인 미국과 달리 중국에서 환경은 지역사회 문제"라고 SCMP에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은 미국에서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하고 "미국이 환경 이슈에 국제적 리더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실상 재고를 촉구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반발하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재협상 요구에도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심각할 정도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뉴질랜드 정부도 미국의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에 실망을 표시하면서 협정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폴라 베넷 뉴질랜드 부총리 겸 기후변화장관은 2일 현지 언론에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면서 "그러나 뉴질랜드는 계속해서 협정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파리협정에 따른 의무를 다하려고 야심 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며 다른 회원국들도 파리협정 의제들을 이행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들을 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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