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즈 지역 6세 여자아이 무덤서 출토…"2천년 전 그리스 영향 보여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은 권위와 부의 상징이다. 옛사람들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승에서 사용하길 기원하며 금붙이를 시신과 함께 묻었다.
지난 1998년 아라비아 반도 동부의 고대 도시 '타즈'(Thaj)의 성벽 밖에서 약 2천년 전에 조성된 무덤이 발견됐다. 그간 타즈에서 확인된 고분은 대부분 도굴된 상태였으나, 이 무덤은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다.
무덤 안에는 6세쯤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의 인골과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 장신구가 남아 있었다. 다양한 부장품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폭 4.5㎝, 길이 15㎝의 황금가면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나온 유일한 황금가면은 현재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에 전시돼 있다. 실제로 보면 타원형 금판 위에 표현된 일자형 눈썹, 각진 코, 작은 입이 인상적이다.
구문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황금가면은 시신의 얼굴 부분이 썩었을 때를 대비해 넣어두는 껴묻거리"라며 "주로 성인 남성의 무덤에서 출토된다는 점에서 타즈의 황금가면은 이례적"이라고 강조했다.
구 연구사는 "그리스 미케네에서 19세기 후반에 나온 아가멤논의 황금가면과 비교하면 제작 시점은 1천500년 정도 늦고 장식 기법의 수준이 조금 떨어진다"며 "그리스·로마 문화가 기원후 1세기께 아라비아 반도 동부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면이 작고, 수염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자아이를 위해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타즈의 황금가면에서 나타나는 특이점은 상하좌우에 작은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다는 것이다. 구멍은 황금가면과 함께 출토된 황금장갑에도 세 개가 있다.
이에 대해 구 연구사는 "세계 각지에서 출토된 황금가면에는 이 같은 구멍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서 "가면을 어딘가에 고정하기 위해 뚫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구 연구사는 "시신 전체에 넓게 흩어져 있던 수많은 금단추는 소녀가 입고 있던 옷의 장식물이었을 것"이라며 "6살 아이가 화려한 부장품과 같이 묻혔다는 사실로 미뤄보면 2천년 전 타즈는 전체적으로 부유하고 계급체계가 확립된 사회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승익 학예연구사는 "고대 문헌에는 아라비아에 번성한 왕국인 게라가 있었다고 돼 있는데, 타즈가 게라일 확률이 높다"며 "황금가면은 아라비아 땅이 동서 문명의 교차로였음을 입증하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기원전 100만 년 전부터 20세기까지 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특별전은 8월 27일까지 이어진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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