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으로 헤어진 남매 재회 다룬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공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국제 입양이 누구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고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입양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인숙 차펠(43)의 작품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This Isn't Romance)가 서울 서계동 소극장 판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 헤어진 두 남매의 재회를 그린 작품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에 남겨진 '미소'와 '한솜' 남매. 8살 미소는 영국 가정에 입양되고 한솜은 홀로 한국에 남겨진다. 모델이 된 미소는 25년 만에 한솜을 찾아 한국에 돌아온다. 남매가 처음 재회하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연극은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은 2살 때 영국으로 입양된 작가의 배경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 개막일인 2일 만난 작가는 "나 자신을 '미소'에 굉장히 많이 투영하고 동생 '한솜' 캐릭터에도 저 자신을 투영했지만 작품은 픽션일 뿐"이라며 "비슷한 점이 있긴 하지만 저와는 다른 캐릭터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는 2001년 한국 정부 초청으로 왔던 한국에서 절대로 자신이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했다.
"영국에서 살면서 다른 인종적인 조건 때문에 100% (영국사회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죠. 한국에서는 다르겠지라는 환상을 가지고 왔는데 환상이 깨지는 경험들을 몇 가지 했어요. 한국 정부가 초청한 '엄마의 땅'이라는 투어였는데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입양아의 실태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해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국제 입양이 누구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고 끝내 극복하지 못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입양아로서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한국인의 정체성을 부인해 왔다는 작가는 그러나 끊임없이 한국과 관련된 작품을 해왔다. 최신작 '평양'은 연기 학교에서 오디션을 보다 만난 북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단편영화 '꽃제비'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인과 영국에 사는 탈북 소녀가 우정을 쌓으며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 이야기다.
"한국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이냐고 묻는다면 맞는 것 같아요.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분명 저의 일부지만 굉장히 헷갈리고 복잡하게 다가오는 정체성이기도 하죠.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죽 써왔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한국에 대한 작품만 쓰는 것은 아니에요. 동성 커플이 아이를 갖기 위한 과정을 그린 작품도 있어요. 유전자와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으로도 볼 수 있긴 하죠."
인숙 차펠은 원래 배우를 하다 극작가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인 30대 초반에 극작을 시작했다. 아시아계 배우로는 맡을 수 있는 배역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는 그가 두 번째로 쓴 작품으로 실제 공연으로 제작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동양계 배우로 활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영국에서는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그렇게 된 계기는 아시아계 작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죠. 아시아 배경 작품들이 같은 시기 나오면서 좋은 아시아계 배우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있기도 합니다."
인숙 차펠은 트라우마로 남았던 2011년 한국 방문과는 달리 "이번 방문에서는 앞으로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특히 전쟁기념관을 찾아 한국전쟁에 대해 조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18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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