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기업에 '○과장', '○부장'이란 호칭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삼성, SK에 이어 LG까지 직급체계를 개편하고 수평적 호칭을 도입하는 등 재계 전반에 조직 혁신의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업무 전문성을 중심으로 인사제도를 개편, 수평적·자율적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의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경쟁 가속화, 노동시장 환경 변화 등으로 과거와 같은 위계와 연공주의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기업들의 고민이 담겼다.
◇ 직급 단순화…계급장 떼고 '님' 호칭
4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는 7월부터 현재 5단계인 사무직 직급을 3단계로 단순화한다. 사원 직급만 기존과 같고 대리·과장은 '선임'으로, 차장·부장은 '책임'으로 통합한다. 앞서 LG디스플레이와 LG유플러스도 직급을 간소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부터 기존 7단계 직급을 4단계로 줄였다. 개인의 직무역량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커리어레벨(CL)도 1-4로 직급을 구분한다. 임직원 간의 호칭은 '님', '프로' 등으로 바꿨다. 존칭 없이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SK텔레콤은 2006년부터 직위를 팀장과 매니저로 단순화했다. 작년부터는 직급 체계도 5단계에서 2단계로 줄였다.
SK하이닉스는 정기승진을 폐지하고 인사 마일리지 제도를 통해 마일리지 점수 누적에 따른 승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호칭 변화의 시작은 CJ그룹이다. CJ는 2000년 1월 '님'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공식 석상에서 이재현 회장을 부를 때도 '이재현 님'이라고 부른다.
아모레퍼시픽, 네이버, 쿠팡, 카카오, 한국타이어 등도 '호칭파괴' 흐름에 올라탔다.
◇ 수평적 조직문화로 혁신 이끈다…임원진 의지 관건
시기는 다르지만 변하는 이유는 같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기 위해서다.
직급에 따른 보고체계를 간소화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수평적인 소통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후배가 선배보다 먼저 승진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연한'이 존재했다. 앞으로는 연한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능력이 뛰어난 사원이 과장, 부장보다 더 높은 직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혁신은 문화가 바뀔 때 가능한데 위계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걸림돌이 호칭이었다"며 "호칭 변화로 상대방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서서히 문화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저성장 시대, 정년연장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이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이 점차 피라미드가 아니라 역피라미드 구조로 변하고 있고, 직원들은 더는 과거와 같은 속도, 방식으로 승진할 수 없다"며 "직급 축소와 팀 내 직원들의 역할 변화로 해법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칭 변화와 직급 단순화만으로는 '한국식' 기업 문화가 단번에 사라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일찌감치 이런 혁신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인정하고 회귀한 기업들도 있다.
KT는 2009년부터 5년간 시행해온 직급 대신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2014년 기존 체제로 돌아갔다. 포스코는 2011년 매니저 등 영어 호칭을 도입했다가 올해 2월 우리말 호칭으로 되돌렸다.
더구나 최근 새 제도를 도입한 기업의 상당수가 임원은 예외로 하고 있다.
부장 이하 직원들끼리만 평등하게 만들고 팀장, 그룹장, 파트장, 보직 임원 등은 여전히 직책으로 부르는 것이다. 위·아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권위적인 문화는 상당수 윗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임원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대면·비대면 시 호칭 통일 등 초창기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직원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합리적인 보상 시스템이 새 제도 성공의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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