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하와이 원주민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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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미국 하와이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관광지다. 야자수가 가득한 아름다운 해변에 머리에 화관을 쓰고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건 원주민이 '알로하'(aloha)라는 하와이 인사와 함께 반겨주는 '쇼핑의 천국'이 하와이가 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러나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이런 모습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들은 '관광객은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며 하와이 원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원주민 출신의 저항운동가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신간 '하와이 원주민의 딸'(서해문집 펴냄)에서 화려한 관광지 속 이미지에 가려진 하와이의 아픈 역사를 드러낸다.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유럽의 탐험대가 처음 하와이 땅을 밟았던 1778년 이후 하와이는 외부인의 손이 닿은 다른 지역들과 같은 길을 걸었다. 유럽인이 전파한 질병은 100여 년 만에 100만 명이던 원주민 인구를 4만 명 이하로 줄였다. 미국 백인 선교사들은 원주민을 개종하는 데 앞장섰고 족장과 왕에게 접근하면서 세력을 넓혀나갔다.
1850년대는 주권을 유지하려는 하와이 왕조와 높은 미국의 관세를 피하고자 미국과의 합병을 주장하는 설탕 플랜테이션(값싼 원주민 노동력과 구미의 자본·기술을 결합한 농업 방식) 경영자들의 갈등이 빚어졌다.
갈등 끝에 하와이가 혼란에 빠지자 미국 군대가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하와이에 상륙했다. 결국, 1893년 하와이 왕조는 미국에 권한을 이양했고 하올레(백인을 뜻하는 하와이어) 임시 정부가 수립된 뒤 1898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때 최종적으로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됐다.
저자는 합병 이후 하와이가 관광지로, 군사기지로, 거대한 쇼핑몰로 변해가며 하와이의 문화가 사라지고 원주민이 주변인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고발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관광지화다. 원주민들은 관광객에게 '살아있는 공예품'처럼 소비된다. 훌라는 '심원하고 복잡한 종교적 의미를 표현하는 고대로부터의 무용이었지만 지금은 멍하니 입 벌린 관광객을 상대로 이국적 정서를 팔아먹는 현란한 춤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하와이 원주민 여성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원시적인 성'을 표현하는 데 이용되고 원주민의 땅은 이제 거대한 쇼핑몰들이 차지했다.
하와이는 군대와 핵 항공모함을 파견하는 군사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거주자의 5분의 1이 군인과 그 가족으로, 지역 민간인과 군인 간의 갈등도 심각하다.
그러나 휴양을 위해 하와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원주민의 현실은 관심 밖의 사안이다.
'지상 낙원'의 미명 아래 가려진 하와이의 이면을 보여준 저자는 하와이의 주권 회복을 주장한다.
책의 해제를 쓴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서구 중심의 민족지 작성에서는 원주민의 역동성과 저항성, 주체성과 객관성은 무시되고 가능한 한 유별남과 특이함, 괴기스러움과 별남, 나태함과 패배의식 등만 강조된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며 "원주민 자치권을 요구하는 트라스크의 역동적인 모습이야말로 하와이 문화연구의 새로운 맥락, 아니 가장 진실한 영역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일규 옮김. 304쪽. 1만5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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