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정책실장-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중용으로 개혁 천명
재계, 개혁 드라이브 견제하면서도 "우리도 파트너" 항변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민경락 기자 = "반성과 참회 중인 우리(대기업)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일자리 창출 등에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우리와도 소통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한 달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한 대기업 임원은 이렇게 '긴장'과 '섭섭함'을 동시에 토로했다.
이처럼 현재 재계는 과연 새 정부 입장에서 자신들은 관용의 여지가 없는 개혁 대상인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동반자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숨죽이고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다.
◇ 재계, 경제민주화 공약에 떨다 장하성-김상조 등용에 '충격'
재계의 곤란한 처지는 앞서 대선 과정에서부터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주요 '경제민주화' 공약으로서 ▲ 재벌의 불법 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 근절 ▲ 불공정 갑질 근절 ▲ 공정거래위원회 역할 강화 ▲ 하도급 근로자 임금 체불 해결 ▲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등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공약대로라면, 앞으로 주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과의 공정한 거래 시스템,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등을 서둘러 갖추지 않을 경우 새 정부로부터 집중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기업들의 '공포'는 지난달 새 정부 '경제 라인'의 인사 윤곽이 드러나자 절정에 이르렀다.
5월 18일 청와대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데 이어, 21일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장 실장과 김 후보자 모두 지금까지 학계와 시민사회 영역에서 가장 큰 소리로 '재벌 개혁' 필요성을 역설해온 인물이다.
장 실장은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2001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대기업의 불합리한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을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소장으로 활동해온 '경제개혁연대'의 전신이기도 하다.
특히 장 실장과 김 후보자가 함께 주도한 재벌 개혁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액주주운동이다. 적은 지분의 일반 주주, 이른바 '개미'들을 무시한 채 재벌 오너 등 주요 주주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경영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견제하자는 취지다.
1997년 3월 제일은행 주주총회에서 장 실장이 경영진의 부실경영 책임을 제기한 것이나, 김 후보자가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설전을 벌인 사건은 한국 소액주주운동의 상징적 장면으로 회자될 정도다.
비단 '재벌'로 분류되는 기업 집단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시급 1만원선 인상, 소상공인·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복합쇼핑몰 규제 등의 나머지 주요 경제 정책들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임금 비용이 늘어나고, 공격적 사업 영역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일자리 창출 협조할테니 소통 대상으로 봐달라"
따라서 실제로 재계에서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급격한 경제민주화나 일자리 창출 압박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앞서 지난 2월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은 공동 성명을 통해 경영 투명성 확보, 소액주주 보호 등을 취지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 움직임에 공식적으로 뚜렷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예를 들어 이들 경영단체는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핵심 장치인 '집중투표제'에 대해 "투기성 외국자본에 완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며 반발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 1표' 방식이 아니라 1주에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표)을 주는 제도로,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외이사에 표를 몰아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재계는 "과거 SK에 대한 소버린의 공격과 KT&G에 대한 칼 아이칸의 공격으로 1조 원이 넘는 국부가 유출되었던 아픈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소액주주권한 강화에 따른 대주주 의결권 제한, 외국 투기 자본의 경영권 공격 가능성을 계속 강조해왔다.
지난 4월 말에는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이 "세금을 쏟아 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고, 당장은 효과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 등 당시 대선 후보들의 공공 일자리 창출 공약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 부회장은 한 달 뒤 5월 25일 경총포럼에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다. 논란의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라며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볼멘소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정부와 노동계는 물론, 경영계까지 지혜와 힘을 모아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뒤, 이런 종류의 재계 '항변'은 일단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경 유착 현실과 불투명한 재벌 경영의 민낯이 드러났고, 대선 과정과 이후로 문 대통령의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상황에서, 더 이상의 '딴지'는 '초대형 개혁'이라는 더 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인사에서 경제 개혁 의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아직 정부가 뚜렷하게 재계에 '이런 이런 것을 하라'고 요구하거나 압박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긴장하면서 어떤 형태로 공약이 실현될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새 정부의 1순위 경제 공약이 '일자리'지만,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결국 대기업 등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경제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을 '소통'의 파트너로 보고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고, 재계의 얘기도 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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