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내 운명" 93세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의 연주

입력 2017-06-08 11:22  

"피아노는 내 운명" 93세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의 연주

제갈삼 전 부산대 음대 교수, 세계 최고령 기록 2년 앞둬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마음에서부터 마음으로 가는 것"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 제갈삼 전 부산대학교 음대 교수는 베토벤의 '장엄미사'라는 작품 첫머리에 쓰인 구절을 인용했다.

올해로 93세. 중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한평생 피아노를 연주한 그에게 "피아노는 어떤 의미냐"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다.

"음악은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구도의 과정입니다. 영혼과 마음의 소통이지요"라고 그는 부연했다.

8일 부산 광안리 해변 인근에 있는 제갈 교수의 자택에서 연합뉴스가 그를 인터뷰했다.

제갈 교수는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 기록 수립을 2년 앞두고 최근 연주회를 잇따라 열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연주실에는 커다란 피아노 2대가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클래식 CD와 엘피판, 악보와 철학책이 책꽂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제갈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베토벤의 '월광' 교향곡을 연주했다.

제갈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제갈 교수는 생기가 넘쳤다.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에 가득한 주름과 약간 굽은 허리만이 그의 연륜을 말해 줄 뿐, 연주하면서 눈을 감았다가 천장을 올려다보고 다시 건반을 내려다보며 감정을 표현하는 그의 몸짓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피아노 건반마다 3개의 줄이 연결돼 있는데 밸런스가 틀어지면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이에도 줄이 약간 틀어진 것까지 알아챌 정도로 청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매우 운이 좋습니다. 신의 축복입니다."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 기록은 미국인 루빈스타인(1982년 사망 당시 94세)이 세웠다. 루빈스타인은 숨지는 그해에도 피아노를 연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갈 교수는 내년 루빈스타인과 함께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르고 후년에는 이 기록마저 깰 수 있다.

제갈 교수의 공연기획자인 박흥주 부산문화 대표는 "2년 후면 최고령 피아니스트로 기네스북 등재가 가능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제갈 교수는 일본강점기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소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구사범학교(5년제 중고등 교육기관)로 진학해 14살 때 피아노 특기생으로 뽑혀 교육을 받았다.

19살 때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시작하며 교편을 잡았다.

이곳에서 2살 연하의 교사인 아내 금정숙(91)씨를 만났고 인생에 많은 영감을 준 동료 문학교사 김춘수 시인과도 인연을 맺었다.

제갈 교수는 "김 시인은 3살 더 많은 또래 교사로 교무실 책상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친하게 지냈다"면서 "순수하고 착한 사람, 예민하고 감수성이 깊어 배울 게 많은 분"이라고 기억했다.

제갈 교수는 이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2007년 김춘수 시인의 시로 가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후 부산여중, 경남여고 음악교사,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생활을 한 뒤 부산대 음악학과 교수로 1991년 정년 퇴임했다.

1세대 피아니스트로 제자를 양성하면서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부산국제음악제 음악감독과 진흥회 이사장 등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2004년 한국문화예술원에서 편찬한 '한국근대예술사' 구술 채록에 우리나라 음악사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제갈 교수는 2015년 구순 음악회, 2016년 망백 음악회를 여는 등 최근에도 활발하게 움직인다.

지난달 31일 부산 사상구청에서 무료 연주회를 연 데 이어 오는 10일에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무료 음악회를 연다.

그는 "무대는 저를 설레게 하고, 늘 준비돼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제갈 교수의 목표는 100세까지 연주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건강관리에 힘쓰는데 최고의 건강비결을 '아내'로 꼽았다.

슬하에 6명의 딸이 있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어 부부만 따로 살면서 서로를 돌본다.

"장수하는 노인은 많지만 혼자인 경우가 많아서 많이 외롭죠. 그런데 저는 아내와 이 나이에도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매일 점심을 먹고 나면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함께 운동도 합니다."

제갈 교수는 매일 철학책을 읽고 1주일에 2번은 영어를 배우며 두뇌 쓰는 활동을 한다.

또 오트밀과 사과 브로콜리로 된 채소 식단에 직접 만든 녹차라테도 챙겨 마신다.

그는 "공자께서 음악을 '성·음·악' 3단계로 나누었는데, 소리만 듣는 '성'은 최하, '음'을 알면 보통, 정신이 소통하는 최고 경지는 '악'"이라면서 "10년 전에 독일 피아니스트 한스라이그라프의 연주를 들으며 '악'의 경지를 느낀 적이 있는데 저도 100세가 될 때까지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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