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1년 앞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가보니

입력 2017-06-08 15:19   수정 2017-06-08 15:35

개원 1년 앞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가보니

민주화운동 희생자 52명 안장…84기 여유 공간

아직 덜 알려져 1년간 내방객 1만명도 안 돼

(이천=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이젠 편안히 이곳에서 잘 쉴 수 있겠다고 안도하시는 유족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옵니다"

'6·10항쟁 3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8일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만난 하수봉 민주화운동기념공원기념사업소 학예연구사는 지난 1년간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신 열사 52분을 모신 묘역을 관리하고 유족들을 만난 소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466억 원의 국비로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 산 28-4일대 15만784㎡의 부지에 조성해 지난해 6월 9일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민주화운동 희생자 136기를 안장할 묘역, 기념관, 영정과 위패를 모신 봉안소, 관리사무소와 편의시설을 갖췄다.

현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된 52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남이천IC에서 빠져나오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을 만날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나와 기념광장과 깃발광장을 지나면 왼편으로 기념관이 보인다.

기념관 입구 앞 벽면에는 지난해 1월 15일 별세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쓴 현판 글씨 '민주는 사람이다'가 눈에 확 들어온다.

신 교수는 투병 중임에도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측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 현판 글씨를 써 주었다고 하 학예사가 전했다.

기념관 제1전시실은 민주열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생명력 있는 '민주나두'가 되어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라는 열매로 형상화되어 맺힌 것을 상징하는 컨셉트로 꾸몄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각종 걸개그림과 저항시를 전시하고, 열사들을 검색해 그들의 항쟁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 탐색코너도 만들었다.

제2전시실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열사들의 희생과 성과를 통사표로 정리했다.

1948년 제1공화국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고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모신 열사들의 발자취를 알기 쉽게 정리해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가 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실 한쪽에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서 가혹한 노동환경에 내몰려야 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봉제공장 작업장을 재현해놨다.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으로 피곤함에 지친 한 10대 여성노동자가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나는데도 작업반장에게 혼나고 있고, 이들 옆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리를 굽힌 채 다림질과 바느질을 하는 노동자 5명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작업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현충일 추념식에서 언급한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을 상징한다고 하 학예사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드린다. 재봉틀을 돌리며 눈이 침침해지고 실밥을 뜯으며 손끝이 갈라진 그분들"이라며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그것이 애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시실 한 벽면에는 열사들의 어록을 옮겨놨다.

"최루탄에 맞던 날, 절대로 앞장서지 말라고 당부하시던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다시 시위 현장에 나가며 다짐했습니다. 부모님께 미안하지만, 민주주의, 조국통일을 이뤄내기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강경대의 일기)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총학생회장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숨졌다.

전시관을 보고 나서 유영봉안소와 '고난의길'을 지나면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된 민주광장을 만난다. 민주광장은 기념공원을 방문하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곳이다.

기념관에는 열사들의 유품이 하나도 없다. 당시 열사들이 소위 '빨갱이'로 몰려 탄압을 받으면서 가족들이 문제가 될 만한 물건을 모두 없앴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사업소가 올 하반기에는 유족들과 협의해 유품을 최대한 모아 수장고로 이관하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민주광장 왼편으로는 열사 52분을 모신 묘역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보다 2m가량 높아 이곳이 묘역인지 쉽게 알지 못할 정도다. 묘역이라는 선입견을 품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려한 배치라고 한다.

묘역으로 올라가면 맨 앞줄에 '김중배의 묘' 표지석을 마주한다. 1965년 4월 13일 서울 퇴계로에서 한·일협정 반대시위 도중 진압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 골절로 이틀 만에 사망한 김중배 열사를 모신 묘지다.

그 옆에는 인혁당 진상규명활동을 하던 중 1974∼1979년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2003년 11월 29일 사망한 임인영 열사의 묘가 있다. 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창일씨의 아내인 그는 유신헌법 반대운동으로 수배된 이재문씨를 자택에 은신시킨 혐의로 구속돼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묘역은 열사 136분을 모실 수 있도록 조성됐지만, 아직 절반도 차지 않은 채 84기의 여유 공간이 남아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 가운데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보다는 4·19와 5·18과 관련된 사업에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고, 일부 유족은 여러 개인적인 이유로 아직 기념공원에 이장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87년 경찰에 연행돼 고문받다 사망한 박종철 열사와 1987년 6월 9일 서울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시위하다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등 많은 민주열사를 위한 묘지가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9일로 개원 1주년을 맞지만, 현재까지 총관람객 수는 9천199명으로 1만명도 되지 않는다.

1년 전 개원식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은 채 '조용한 행사'로 진행되는 등 전국적으로 홍보가 되지 않았던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념공원 측은 관람객 유치를 위해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시프로그램과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다소 무겁고 딱딱한 주제의 민주화운동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획프로그램도 운영할 방침이다.

기념관에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등을 위한 각종 체험장과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해뒀다.

이날도 유치원생 20여명이 체험을 했고, 남양주시청 공무원노조 소속 공무원 15명이 찾아와 전시관과 묘역을 둘러봤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문의:안내센터 ☎031-633-8465)

하 학예사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자녀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면서 "더 많은 국민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hedgeho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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