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실패 메이총리 동력 훼손…'하드 브렉시트'에 불확실성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 집권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함에 따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진로가 수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조기총선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거'였다. 메이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하고 국민의 신임을 직접 묻는 성격이었다.
하드 브렉시트는 유럽연합(EU)을 떠나면서 EU 단일시장에서도 이탈하는 것을 뜻한다. EU와 관계를 완전히 끊는 것이다.
영국이 EU 시민의 이민 억제를 위해 국경 통제를 되찾고 EU 사법권으로부터 독립하고, 노동·환경·산업 등 각종 EU 법규들을 따르지 않는 등 주권을 완전히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야권이 이런 하드 브렉시트에 계속 반발하자 메이 총리가 "강력한 협상권을 손에 달라"며 조기총선을 전격 요청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과반 의석 상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자, 메이 총리와 집권 보수당으로선 진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선거전에서 야권은 하드 브렉시트 반대 전선에 집결했다.
노동당은 공약에서 "브렉시트 결정은 존중한다"면서도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의 혜택을 유지하는 데 강력한 중점을 두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고 명시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유세에서 "일자리와 삶의 수준을 지키기 위해 EU 단일시장 무관세 접근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이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 우선순위"라고강조했다.
노동당은 의회가 브렉시트 협상 합의안을 놓고 "의미 있는 표결을 한다"고 공약했다.
소수당인 자유민주당은 합의안을 놓고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까지 약속했다.
제2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EU 단일시장 잔류가 스코틀랜드의 이익이라며 EU 단일시장과 독립국가를 묻는 제2의 독립 주민투표를 중앙정부에 요구해놓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과반의석을 상실한 것은 하드 브렉시트에 제동이 걸렸음을 뜻한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프트 브렉시트 가능성이 증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보수당이 제1당이 됐지만 하드 브렉시트를 추진해온 메이가 총리직 위기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설령 메이가 총리직을 유지하더라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만큼 하드 브렉시트 추진 동력이 떨어진 것으로 봤다.
반대로 의회 내 입지가 확대된 야권은 하드 브렉시트에 고강도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 총리는 "나쁜 합의(bad deal)보다 아예 합의하지 않는 게(no deal) 낫다"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상황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코빈 노동당 대표는 "노 딜은 사실상 배드 딜이다. 최악이다. 모든 산업에서 '노 딜'은 경제적 재앙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코빈 대표는 브렉시트가 EU 4대 기본원칙인 '사람 이동의 자유'의 끝을 뜻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서도 "이민정책은 경제와 지역사회들에 최선인 것에 기반을 둘 것"이라고 말해 EU 이민 억제에 유화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민자 감축 목표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코빈 대표는 지난 1일 유세에서 "총리가 되면 곧바로 베를린으로 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우리가 국민에게서 받은 위임, 우리가 바라는 EU와 관계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야권은 완전한 결별을 감수하고 강력한 협상에 나서려던 메이 총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EU와 협력에 방점을 두는 브렉시트 협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의회 권력지형 아래 브렉시트 협상에 임하는 보수당 정부의 협상 입지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런던에 있는 한 EU 회원국 외교관은 일간 가디언에 과반을 잃은 "영국 정부가 보수당 의원들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것 같다. 의회에서도 메이 총리에 대한 저항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영국 측 협상팀이 끊임없이 뒤를 살피게 될 텐데 이는 좋은 협상의 처방이 아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협상팀이 타협할 때마다 자국 정부 장관들과 의회를 설득해야만 상황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EU 본부에선 오히려 강력한 정부를 상대로 협상하는 것이 원활한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상실함에 따라 당장 오는 20일 시작될 예정이던 첫 협상이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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