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술대회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갈등과 분열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표적인 정치학자인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치권의 대립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승자독식 모델을 버리고 권력을 분점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명예교수는 지난 9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민주화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기조 발제자로 참가해 '87년 체제' 이후 30년간 한국이 민주주의로의 전환, 민주주의 공고화, 질적으로 높은 민주주의로의 전진을 압축적으로 이뤄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촛불 집회'를 광장 민주주의로 규정하면서 광장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결합한 '헤테라키(heterachy) 민주주의'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개방적 참여, 사회적 신뢰, 협력적 경쟁이 헤테라키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임 명예교수가 '87년 체제' 이후를 전망하면서 권력 분점을 강조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갈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주의는 갈등하는 국민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데서 출발한다"며 "정체성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상이한 이념 간에 권리와 의무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 명예교수는 정치적 소수파에게도 권력을 주는 '합의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초다수제 강화와 극단주의 배격을 제시했다.
그는 "초다수제는 헌법 개정, 법관 선임 등의 문제를 결정할 때 의회에서 절대다수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라며 "다수지배주의의 분열적 요소를 완화할 수 있는 장치"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와 보수 간에 경계를 넘나들고 침투할 수 있는 제도를 입법화하고 다원주의 정치문화를 장려해야 한다"며 "극단주의자들을 배제하는 제도를 초당적으로 만들어 중도통합주의자들이 다수가 되는 정치구조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명예교수는 정치권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 개헌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그는 "헌법을 개정한다면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며 현행 대통령제에서 참여와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비례대표제 강화, 지방분권형 헌정제도와 부통령제 도입, 헌법재판소 개선 등을 개헌 과제로 꼽은 임 명예교수는 "새로운 헌법은 남북통일이 이뤄지고 나서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