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독일인 수녀 "내 고향은 부산 안창마을"

입력 2017-06-10 16:04  

푸른 눈의 독일인 수녀 "내 고향은 부산 안창마을"

달동네 아이들에 21년간 공부방 운영 루미네 수녀 8년만의 귀국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딱 8년 만이네요. 꿈속에도 그리던 분들을 다시 만나게 돼 너무 기쁘고 고향에 온 기분입니다."

8일 오전 지역 아동센터인 '우리들의 집' 25주년 행사가 열린 부산 동구 범일1동 행정복지센터 대회의실에 백발의 루미네(75) 수녀가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회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 차림의 수녀는 참석자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고 안부를 물었다.

1972년 천주교 부산교구 언양 본당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가 1979년 독일로 돌아간 루미네 수녀는 한국 아이들을 잊지 못해 1989년 다시 한국으로 왔다.

한국이 너무 좋았던 루미네 수녀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빛'(lumine)을 의미하는 백광숙(白光淑)으로 한국 이름을 지었다.

루미네 수녀는 "한국에 다시 왔을 때 수녀가 없고 발전이 안 된 곳이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못사는 동네가 하나 있다고 해서 찾아온 곳이 안창마을이었다"며 "방 한 칸짜리 판잣집을 구해 공부방을 시작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수녀는 세 살짜리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12명과 함께 먹고 자며 가족처럼 살았다.

혼자 사는 노인,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 무기력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 등의 삶 속에서 자신을 낮추며 이름처럼 안창마을의 빛이 됐다.

2008년 공부방이 무허가 건물이라 불법으로 몰리는 바람에 마셜제도로 선교활동을 떠나기까지 루미네 수녀는 안창마을에서 '푸른 눈의 성녀', '열두 아이의 엄마'로 불렸다.


8년 만에 다시 부산을 찾은 루미네 수녀에게 이번 행사는 뜻깊었다.

자신이 시작했던 공부방 '우리들의 집' 25주년 축하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불법이었던 '우리들의 집'은 지자체와 천주교 교구의 도움으로 범일1동으로 자리를 옮겨 이제는 번듯한 사회복지법인 지역 아동센터로 운영돼오고 있다.

그동안 6명의 수녀가 시설장을 맡고 자원봉사자와 사회복지사가 힘을 보태 '우리들의 집'을 거쳐 간 아이들만 1천100여 명에 이른다.

루미네 수녀는 "'우리들의 집'이 25년 동안 계속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많은 수녀님과 신부님, 지역 주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루미네 수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안창마을의 한 주민은 "안창마을에서 루미네 수녀를 모르면 간첩"이라며 "너무 보고 싶어 마실 가는 길에 들렀다"고 웃었다.

루미네 수녀는 이날 행사에서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이 준비한 기념 영상과 축하공연을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수녀는 "지금 마셜제도 파푸아뉴기니의 한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가르치고 있지만, 내 고향은 그곳도 독일도 아닌 한국 안창마을"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16일에는 범일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주최로 안창마을 루미네 수녀 기념관에서 환영행사도 열 예정이다.

2주간 휴가를 내 부산을 찾은 루미네 수녀는 "이번에 마셜제도로 돌아가면 다시 안창마을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항상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win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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