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서 이색 듀엣 무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슈만 '판타지' 연주가 끝나고 적막이 흐르던 클래식 공연장에 갑자기 빨갛고 파란 조명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쿵작쿵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박자와 함께 무대 위에 등장한 이는 '트로트 왕자' 가수 박현빈(35).
핫팬츠에 민소매 옷을 입은 여성 백댄서 4명과 함께 나타난 그의 시끌벅적한 등장에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클래식 객석에도 박수 소리와 웃음이 번졌다.
이날 공연은 롯데콘서트홀의 기획공연 '손열음의 음악 편지' 두 번째 무대. '손열음의 음악 편지'는 손열음이 2015년 발간한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서 다룬 음악들과 에피소드 등을 바탕으로 꾸리는 무대다.
에세이에 담았던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시던 친할머니에 대한 단상이 이번 이색 무대로 이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여기던 손녀 연주회에서조차 아무 재미를 못 느끼시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친할머니가 방바닥에 멍하니 쭈그려 앉아 "트랜지스터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 음악'에 홀려 계셨던" 모습을 보고 손열음은 "진심으로 놀랐다"고 책에 쓴 바 있다.
정통 클래식과 트로트와의 합동 무대가 처음 알려지면서부터 "파격적인 시도", "이색적인 무대"라는 기대 평이 이어졌다.
손열음 없이 먼저 무대 위에 올랐던 박현빈은 "이런 무대는 처음"이라며 다소 어색해하면서도, 재치있는 말솜씨로 관객들을 호응을 끌어냈다.
박현빈은 점잖은 객석 분위기에 "화나신 거 아니죠?", "기분 괜찮으신가요?", "원래 이렇게 조용하신가요?"를 계속 물으며 서로 어색할 수 있는 객석과 무대에 웃음을 안겼다.
"이런 (낮)시간에는 잘 안 부른다"는 능청스러운 소개에 이은 히트곡 '곤드레만드레'에 클래식 공연장 전체가 들썩였다.
이어 함께 무대에 오른 손열음은 '무정 블루스'와 '샤방샤방' 등 두 곡을 협연했다.
반주자로 나선 손열음은 트로트 곡을 자신만의 감성과 기교로 편곡해 연주했다. 분명 트로트인데 그의 손가락에서는 재즈 같기도, 가요 같기도, 클래식 곡 같기도 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무정 블루스'가 끝나자 박현빈은 "분명 제가 노래를 했는데, 열음씨가 피아노로 노래한 것 같고 제가 반주를 한 것 같다"며 감탄했다.
흥과 에너지가 가득한 가수와 피아노가 함께 한 '샤방샤방'까지 마무리되자 객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평소 클래식 공연장을 종종 찾는다는 오용원(64)씨는 "미리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파격은 예상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며 "고급 예술의 대중화 혹은 대중가요의 고급화의 가능성을 엿본 것 같다"고 평했다.
자녀와 함께 공연을 본 엄정윤(44)씨는 "두 분야의 전문가가 뭉쳐 새로우면서도 창의적인 무대를 만든 것 같다"며 "어설프게 하면 촌스러운 무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손열음 씨의 연주 감각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두 장르의 만남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음악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모씨는 "흥겨운 무대이긴 했지만, 두 연주자 모두 자연스럽게 무대에 녹아든 모습은 아녔던 것 같다"며 "초반에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어색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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