힝기스가 '여제' 등극한 1997년 출생
이번 대회 포핸드 평균 시속 남녀 통틀어 4위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20년 전인 1997년 세계 테니스계는 '알프스 소녀'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의 등장에 열광했다.
1996년 15세 9개월의 나이로 윔블던 여자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미 한 차례 파란을 몰고 왔던 힝기스는 1997년 호주오픈, 윔블던, US오픈 여자단식에서 잇따라 우승을 차지하며 최연소 세계랭킹 1위에 등극했다.
그렇게 1997년 '천재 소녀'의 등장에 다들 주목할 때, 라트비아에서 미래의 '롤랑가로스 여제'가 태어났다. 2017년 프랑스오픈 여자단식 우승자인 옐레나 오스타펜코(47위·라트비아)가 그 주인공이다.
오스타펜코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3천600만 유로·약 452억원) 여자단식 결승에서 시모나 할레프(4위·루마니아)를 2-1(4-6 6-4 6-3)로 꺾고 '여제'로 등극했다.
2012년 프로데뷔 후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대회 우승조차 없던 '무명'의 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자신의 투어대회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달성한 건 1997년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우승자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 이후 처음이다.
더불어 오스타펜코는 라트비아 선수로는 최초로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다. 비시드 선수로 1933년 마거릿 스크리븐(영국) 이후 84년 만의 우승, 역대 프랑스오픈 여자단식 우승자 최저 랭킹(47위) 모두 오스타펜코가 주인공이다.
이번 대회 오스타펜코가 우승할 거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오픈 통산 3회 우승자 세리나 윌리엄스(2위·미국), 2회 우승자 마리야 샤라포바(178위·러시아) 모두 출전하지 않은 가운데 16강에서는 지난해 우승자 가르비녜 무구루사(5위·스페인)까지 탈락했다.
세계 1위 안젤리크 케르버(독일)가 1라운드에서 짐을 싸자 할레프와 카롤리나 플리스코바(3위·체코), 엘리나 스비톨리나(6위·루마니아) 등이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이번 대회 시드를 받지 못한 채 출전한 오스타펜코는 1회전부터 3회전까지 '무실세트'로 3연승을 거뒀지만, 다들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오스타펜코가 16강에서 서맨사 스토서(22위·호주)까지 제압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그를 '돌풍'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상승세를 탄 오스타펜코는 8강에서 전 세계랭킹 1위 캐럴라인 보즈니아키(12위·덴마크), 4강에서 티메아 바친스키(31위·스위스)까지 꺾었고, 이날 결승까지 승리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오스타펜코를 우승까지 이끈 원동력은 남자보다 강력한 스트로크다. 그는 이번 대회 출전한 선수 중 남녀 통틀어 포핸드 샷 평균 속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포핸드 평균 속도 시속 122㎞는 남자 세계랭킹 1위 앤디 머리(영국)의 시속 117㎞보다 빠르다.
게다가 오스타펜코는 젊은 패기를 앞세워 완급조절 없이 1세트부터 3세트까지 공격 일변도로 경기했다.
오스타펜코는 할레프와 결승에서 공격 성공 54대 8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마치 도박을 걸듯 남자보다 강한 샷을 쉴 새 없이 라인에 바짝 붙여 날렸다.
다만 아직 정교함이 부족한 게 약점이다. 결승에서 오스타펜코는 범실 54개를 저질러 할레프의 10개보다 5배 이상 많았다. 오스타펜코가 이것까지 보완한다면 당분간 그를 상대할 여자 선수가 없을 거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화끈한 경기력으로 오스타펜코는 세계 테니스계의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할 자격을 보여줬다.
그가 세리나의 장기 집권과 샤라포바의 도핑 스캔들 등으로 잠시 인기가 주춤했던 여자테니스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4b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