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역사 2cm] '131년 역사' 이화여고 개교 땐 노숙소녀·유부녀 입학

입력 2017-06-12 11:04  

[숨은 역사 2cm] '131년 역사' 이화여고 개교 땐 노숙소녀·유부녀 입학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장녀가 위장 전입한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아파트는 이화여고 진학용 아지트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강 후보자 일가족이 2000년 주소를 옮긴 이 아파트에는 20여 명이 단기간에 전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세대주는 대부분 6개월 안에 원래 주소지로 옮겨갔고, 여고생이나 여중생 자녀를 둔 것이 닮았다.

강 후보자와 장녀도 전입 후 81일 만에 전출했다.

해당 아파트가 자녀의 이화여고 입학을 희망하는 부모의 위장전입에 활용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이화여고는 편법을 써서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설립 초기에는 지금과 전혀 딴판이었다.

이화여고 전신은 1886년 중구 정동 언덕에 설립된 이화학당이다.

미국 북 감리교회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1832~1909년)이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이다.

젊은 시절부터 선교사업을 꿈꾼 스크랜턴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885년 6월이다.

미국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외아들 내외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40세에 남편을 잃은 스크랜턴 밑에서 자라 명문 예일대 의대를 졸업한 아들이다.

입국 2개월 후에는 초가집 9채와 빈터 6천 평을 매입해 학교로 활용한다.

낡은 집이지만 수리해서 교실까지 만들었으나 학생 모집에서 큰 난관에 봉착한다.

비슷한 시기에 남성을 모집한 배재학당이 비교적 수월하게 개교했으나 스크랜턴은 단 1명의 여성도 구하지 못했다.

여성 교육을 기피하는 유교 전통과 서양인을 배격하던 사회 풍조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은 남존여비 사상에 눌려 가정에서 새벽부터 심야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야만 했다.

이런 시절에 신학문을 배우겠다고 스스로 학교를 찾아오는 여성이 있을 리 만무했다.

급기야 스크랜턴은 무작정 도심 거리로 나섰다.

공부를 가르칠 여성을 찾기 위해서다.






학교에 오면 공짜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고 했는데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시민들은 스크랜턴이 지나가면 '서양 도깨비'라고 손가락질하며 피했다.

가정 방문 때는 부녀자들이 급히 문을 닫고 숨어버렸으며, 아이들은 무서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간신히 학생을 구해도 서양인이 소녀를 잡아먹는다는 유언비어 탓에 금방 달아나 버렸다.

번번이 허탕을 친 스크랜턴은 이듬해인 1886년 낡은 초가집을 허물고 한옥 교실과 교사 숙소를 신축한다.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그해 5월 31일 스크랜턴은 처음으로 반가운 손님을 맞는다.

성이 김 씨라고만 밝힌 여성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스크랜턴은 그날부터 김 여인에게 개인교습을 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이화학당 창립 기념일이 5월 31일로 정해진다.






고위 관리의 첩으로 들어간 김 여인은 명성황후 통역을 하려는 욕심에 열심히 공부하는 듯했으나 건강 문제로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된다.

김 여인을 가르친 지 한 달 만에 들어온 10대 초반의 복순이가 두 번째 학생이 된다.

복순이는 찢어지게 가난해 식구를 한 명이라도 줄이려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왔다.

스크랜턴은 복순이를 씻겨주고 새 옷까지 사줘 가며 친자식처럼 돌봐주다가 며칠 만에 황당한 경험을 한다.

복순이 어머니가 찾아와 다짜고짜 딸을 데려가겠다고 생떼를 썼다.

딸을 서양인에게 맡긴 것을 두고 '몹쓸 여자'라고 이웃들이 수군거린 데다 조만간 복순이가 미국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스크랜턴은 어이가 없었지만, 서약서를 써주고 간신히 달랜 끝에 복순이를 잡을 수 있었다.

서약서는 "복순이를 기르고 공부시키되 어머니 허락 없이는 외국은 물론, 단 십 리도 데리고 가지 않겠다"라고 적었다.

몇 달 뒤에는 4살짜리 소녀 조별단이도 이화학당에 합류한다.

별단이는 콜레라와 발진티푸스에 걸려 서소문 일대에 버려진 환자들 틈에 있었다.

환자들은 낡은 거적에 누워 신음했고, 일부는 죽어가고 있었다.

분뇨와 시신 악취 탓에 파리떼 공격을 받았으나 팔을 들어 올려 내쫓을 힘조차 없었다.

스크랜턴은 콜레라에 걸려 쓰러진 엄마 품에서 탈진한 별단이를 발견하자마자 끌어안고 이화학당으로 데려갔다.

이듬해 2월에는 고종 황제가 '이화학당'이라고 적은 현판을 하사하고 경호원도 보내준다.






국내 1호 서양식 여자학교를 대한제국 황제가 공인한 것이다.

훗날 이화학당에서 이화여고와 이화여대가 탄생한다.

학교 주변은 온통 배 밭이라 봄마다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배꽃 핀 골에 세운 학당이라는 의미로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새 건물을 짓고 황제 공인까지 받았는데도 학생은 좀처럼 오지 않다가 1890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철종의 사위로 개화운동을 주도한 박영효가 딸을 이화학당에 보낸 것을 계기로 상류층 자녀들이 몰려들었다.

학생이 늘어나자 1891년에는 기와집 교사를 허물고 서양식 2층 건물을 세운다.

붉은 벽돌로 만든 이 건물은 장안의 명물로 소문나 부녀자들에게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이화학당은 개교 후 22년이 지나도록 졸업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학령기를 넘겨 다양한 연령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대략 15~16세에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첫 이화학당 졸업생은 1908년에야 나온다.

중학과정을 모두 마친 5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개교 초기에는 의복, 침식, 책 등 모든 학습 경비를 학교가 지급했다.

기숙사 운영은 사관학교처럼 매우 엄격했다.

모든 학생이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8시 2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공부한다.

저녁 9시에는 예외 없이 불을 꺼야 했고 상차림과 설거지는 학생들이 교대로 맡는다.

기숙사와 교실, 예배실, 강당, 화장실 청소도 학생들 몫이다.

얼굴에 분을 바르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고 일주일간 밥 짓는 벌을 받았다.

황당한 일화도 있다.

체력을 길러주려고 체조를 가르쳤다가 파문에 휩싸인다.

여자가 조신하지 않고 뜀뛰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을 안 일부 학부모가 자녀를 자퇴시켰다.

이화학당 학생은 며느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1895년 고종이 덕·체·지를 교육 강령으로 공표하고서야 체육수업을 부모들이 인정한다.

1910년대에는 체육을 대하는 인식이 확 바뀐다.

한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체조는 물론, 농구와 정구를 했는데도 거부감이 없었다. 민족 스포츠인 궁술을 정규 체육 과목으로 채택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공포 분위기에서 수업이 이뤄졌다.

제복 차림의 일본인 교사들이 칼을 차고 수업을 했으며 일본 창가를 억지로 암기하도록 했다.

모든 학생은 일본 천왕이 내린 교육칙어를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다.

일본 건국절과 천왕 생일, 새해 첫날 등에는 교장이 엄숙하게 교육칙어를 낭독하는 의식에 참여해야만 했다.

이화여전이 대학으로 승격된 1946년 김활란 교수(1899~1970)가 초대 총장에 취임한 것을 두고는 친일 논란이 일었다.

김 총장은 한동안 여성 계몽과 농촌 문맹 퇴치에 앞장섰으나 일제 후반에 학도병·징용·위안부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에는 학생들이 친일행각을 규탄하며 김활란 동상에 달걀을 던지고 페인트칠을 했다.

말을 탄 정유라 씨가 학교 안으로 몰래 들어올 수 있도록 총장과 교수들이 뒷문을 열어준 것은 배꽃처럼 고결하고 아름다운 이화학당 131년 역사를 오염시킨 사례다.

이화여대 첫 직선제 투표로 당선돼 5월 31일 취임한 김혜숙 총장은 정유라 씨 부정입학을 사과하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이화인의 힘은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 데서 나온다며 새로운 도전도 다짐했다.

편안한 노후를 포기한 채 세계 최빈국 조선으로 건너와 여성 자유와 계몽의 씨앗을 뿌린 스크랜턴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화여고 입학용 아지트로 의심받는 아파트 위장전입 실태를 밝혀 항간의 의혹을 해소하는 일은 이화학원의 몫이다.

길거리 전염병 환자들 틈에서 탈진한 노숙 소녀를 품에 안고 공부시킨 스크랜턴에게 반칙과 특혜는 모욕이다.

had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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