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0시부로 가금류 유통 금지…중간유통상엔 보상금 없어
전북 김제·경남 고성·제주시 전통시장과 음식점 '적막감'
(전국종합=연합뉴스) "저희더러 이번 사태를 초래한 주범이래요. 사실 우리도 피해자거든요. 지금 생계도 막막한데 손가락질까지 받으니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전북 김제에서 육계 사육농장을 운영하는 가축거래상 노모(66)씨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이후 일손을 놓았다.
발병과 동시에 전통시장과 가든형 식당에서 살아있는 가금류 유통이 금지된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일 0시부터는 이런 가금류 유통금지가 전국 모든 가축거래상인으로 확대됐다.
농장에서 하릴없이 사료만 축내고 있는 닭의 판로를 찾고 있던 노씨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운영하는 농장에는 육계 2만6천여 마리가 있다.
초복이 곧 돌아오는 이맘때쯤이면 하루에 닭 300∼400마리를 출하해야 하지만 팔 곳이 없어 그저 손 놓고 있다.
가금류 유통이 금지된 이후 지금까지 사룟값만 수백만원이 들어갔다.
AI가 발생한 농가는 살처분 보상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중간유통상에게는 그마저도 쥐어지지 않는다.
노씨는 "이번 여파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2천 평이나 되는 농장 내 가득 찬 저 닭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차라리 이럴 바에야 이 농장에도 AI가 발병해 살처분 보상금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닭을 사들이고 있지만 내가 직접 내다 파는 금액보다 많이 적다"면서 "농식품부에 항의하면 우리를 AI 주범으로 몰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AI 청정 지역으로 불리던 제주시에서 가축을 거래하던 김모(56)씨도 이번 사태로 된서리를 맞았다.
계약한 음식점들이 더는 김씨의 닭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AI 사태 이전에 물량을 넉넉히 받아둔 음식점들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가든형 식당이 밀집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음식점들은 죄다 문을 닫았다.
정부의 가금류 유통금지는 식당 업주들뿐만 아니라 김씨에게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김씨는 "다른 농가나 가든형 음식점에 닭을 넘기기로 한 상황에서 살처분이 이뤄졌다"면서 "다른 가축 거래상들도 오늘 살아있는 가금류의 유통이 전면 금지되자 불안에 떨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일 첫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경남 고성에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성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이모(70)씨는 AI 때문에 손발이 묶여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1년 중 닭 시세가 가장 좋은 초복에 닭을 팔지 못하게 돼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AI 발생 농가로부터 반경 3㎞ 내 입식 전면 금지에 이어 가금류 유통마저도 금지돼 이씨는 "대목장사가 물 건너 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AI의 진원지로 지목된 군산 농장주와 방역 당국이 원망스럽다"며 "AI를 전국에 퍼뜨린 그들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밥줄이 다 끊어지게 생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린 가축거래상인의 가금류 유통금지 조치는 12일부터 2주 동안 시행된다.
2주 뒤에도 전통시장과 가든형 식당의 가금류 거래 금지 조치는 유지된다.
전북도 관계자는 "정부는 중간유통상의 닭을 수매하고 경영 안정을 위해 저금리 대출을 해주고 있다"며 "이런 혜택 외에 사실상 이들은 정부 보상금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고성식, 장영은, 박정헌, 임채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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