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재판 증언…"처벌 부적절…손해 생겼다면 소송으로 가려야"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는 정책적 판단의 영역이지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증언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근무한 허현준 전 행정관은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같이 주장했다.
허 전 행정관은 조 전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부하 직원으로 일했다. 박근혜 정부가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의 '관제시위'를 지원했다는 의혹의 배후로 의심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조 전 수석 측 증인으로 나온 허 전 행정관은 "정부는 인사와 재정 업무를 수행할 때 원칙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보조금을 사용할 땐 적법한 대상인지의 기준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원배제 대상의 경우도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제 생각엔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나 인사 등은 자격 조건에서 지원배제 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는 모두 정부의 "정책 결정 사항"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원배제 선정'은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이라는 김 전 실장 등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허 전 행정관은 "국고 보조금을 지원할 때 중복 수혜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단체에 기회를 주기 위해 때로는 중복 대상자도 지원배제로 선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 같은 경우는 정부가 권한을 갖고 필요한 대상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선정할 자격이 있고, 이는 적법한 행정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원배제 대상을 선정한 것에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만일 지원배제 대상으로 선정된 당사자나 단체가 실질적으로 저 명단에 있다는 것만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행정소송으로 피해 여부를 가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면 최종 책임자인 문체부 장관이나 차관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식으로 정치적·정책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처벌로 책임을 묻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허 전 행정관은 '블랙리스트' 사건이 특검법에서 정한 수사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권력 투쟁적 성격으로 진행된 사안이라 최순실과 상관이 없는데도 정치적 희생자로 삼으려 하지 않았나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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